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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노동자로서의 예수를 사랑한다. 하지만 덮어놓고 육체 노동을 신성시하는 부류를 어떤 면에서 가장 경계하고 의심한다. 일보다는 여가를 사랑하는 러셀주의자랄까? 러셀 말대로 삶 그 자체보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 의해 우리 인류가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해왔고, 그 때문에 이 세상이 되레 더 나빠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도 나는 되도록 러셀의 충고에 따라 살려고 했다. 아예 모니터 위에 이런 내 마음의 강령을 적어 놓고 일했다.

‘조직으로 일을 줄여야 한다!’ 후배는 물론 심지어 상사에게도 그것이 ‘인류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강권하고 싶었다. 당연히 잘렸다. 17년 동안 그럭저럭 버티긴 했지만 결국 잘려 나갔다. 억압적인 위계 시스템에 버럭버럭 소리 지르며 대항하다가 제 발로 걸어나왔지만 사실상 잘린 거나 다름없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래도 눈곱만큼도 후회가 없다. 후회하기는커녕 그때 그렇게 꼴사납게 싸우지 않았더라면 월급에 목이 매여 제 발로 그만두지 못하고 아직까지 회사에 다녔겠지 생각하곤 하는데, 그럼 되레 식은땀이 난다.

정말이지 회사를 그만두고 4년을 즐겁게 헤맸다. 도서관에 다니며 전업작가로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다가 여의치 않아서 서둘러 귀촌했다. 귀촌 후 남편의 집 짓기를 도우며 두 권의 책을 냈다. 200장 벽돌을 날라주고 밥을 하고 원고를 쓰는 식이었다. 그 와중에 어느 지방 방송의 영화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무려 6개월 동안이나 서울과 부산, 평창을 오가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살았다. 플립보드라는 미국의 소셜 매거진 일에 이어 지금은 에어비앤비의 호스트로 살고 있으니 그야말로 디지털 잡(job) 노마드가 따로 없는 삶.

그런데 나 같은 사람들을 부르는 신조어가 생겼단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 ‘gig’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그렇듯 재즈 연주자들을 모으듯, 춤추듯 가볍게 스마트폰 앱을 플랫폼 삼아 언제 어디서나 유연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경제 시대가 왔다고.

이제 전문가들은 평생직장 시대는 갔다고 진단한다. 정규직은 없고 계약직, 비정규직만 있는 세상이라니, 매우 암담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틀에 박힌 직장보다는 ‘긱’과 같은 탄력 있는 일자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되레 더 크고 만족도도 더 높다고 한다. 긱의 주체들이 일정한 회사에 고용된 직장인보다 훨씬 직업을 즐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하는데, 나 자신의 경험을 말하자면, 거짓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나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을 응원하는 후원자다. 뭐 대단한 후원자는 아니지만 여하튼 후원자다. 5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가난한 프리랜서 작가이자 자영업자로 살기 시작한 이래 가지각색 고지서와 나날이 옥죄는 ‘빚’에 마음이 우중충할 때도 푼돈이지만 얼마 안되는 후원금을 냈다. 그리고 지난 7월부터 이것저것 다 빼고 처음으로 순수익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하자 그 수익의 10%를 다시금 2차 후원금으로 냈다.

‘꿀잠’을 생각하면 노순택 작가가 찍은 한 장의 사진부터 떠오른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요구하며 오체투지로 차가운 땅바닥을 기던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한없이 낮아진 모습. 그 중심에 이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이콘이자 전설이 된 기륭전자 언니들이 있었는데 왜 그런지 그 모습이 비참해 보이기는커녕 어떤 종교적 의식보다 더 경건하고 또 성스럽게 느껴졌다.

그 사진 아래 노순택 작가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기륭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이 필요하다’고. 그런데 그건 기륭의 언니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긴 시간 지독하게 투쟁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복직과 생계를 원하는 기륭인이 아니라 그 이상의 ‘우리’였기에 가능했다는 걸 그때 노순택 작가의 사진과 글을 보며 처음 알았다. 미안하다. 그 이전까지 나는 10년 넘게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미련 곰탱이’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직장이 뭐라고 목을 매고 투쟁하나? 오죽 미련하고 무능하면 그렇게나 오래?’ 그렇게 생각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시덥지 않은 교만함으로….

그러다가 얼마 전 백기완, 문정현 두 어른이 ‘벽돌 몇 장 보태는 마음’으로 꿀잠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전시회에는 못 갔지만 두 분의 인터뷰 기사를 경향신문에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나 이렇게 말하는 백기완 선생의 저렁저렁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예수는 노동자였어. 목수였잖아. 노동으로 단련된 몸으로 부당한 사회질서에 대항한 깡따구 있는 인물이었다고.”

그렇다, 난 노동자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노동자이고 싶다. “노동하지 않는 삶은 부패하고, 영혼 없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는 카뮈의 말을 마치 신앙처럼 믿는 노동자. 긱이든 긱이 아니든 사소한 경계를 너머 우리를 보는 노동자.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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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