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한때 판소리에 빠져 소리를 꽥꽥 질러댈 때가 있었다. 그 어름에 곁따름으로 배운 어느 민요의 가사에 특히 마음이 걸렸다. 그리하여 경상의 북도를 지나칠 때면 그곳에 한 번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지니고 다녔다. 지난 추석 이틀 전 문경의 조령산에 가서 가을이 이슥하도록 꽃을 활짝 피운 가는잎향유를 보았다. 일행은 하행선, 나는 상행선.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머리를 굴리니 오랜 숙제를 풀기에 딱 맞을 것 같은 거리요 시기인 것 같았다.

삼국시대에 조성되었다는 상주의 공갈못은 그 명성에 비해 초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관광지로서의 요란한 시설도 하나 없었다. 하나의 큰 저수지일 줄 알았더니 여러 구역으로 나뉜 연못이 여러 개 있었다. 이 못을 축조할 때 ‘공갈’이라는 아이를 둑에 묻었다는 믿기 어려운 전설을 간직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는 공갈못. 경운기가 넉넉히 비켜갈 만한 공갈못의 사잇길을 걸었다. 잘 순환이 되지 않는 듯 거무튀튀한 물에 통발, 물달개비 등등의 수중식물이 빽빽했다. 혹 귀한 풀이라도 있을까 두리번거리다가 길섶에 난 며느리배꼽의 알록달록한 열매를 보는 순간 퍼뜩 알아차렸다. 여기에서 무슨 사연을 엮겠다고 잔머리를 굴리는 건 모두 췌언에 가깝다는 것을. ‘옛 여성들의 서글픈 탄식과 애환을 담은 민요’인 ‘상주 함창가’를 얼른 불러내었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연밥 줄밥 내 따 주마 우리 부모 섬겨다오//고초 당초 맵다 해도 시집살이만 못 하더라/나도야 죽어 후생가면 시집살이는 안 할라네(…)”

노래가 끝날 무렵 압도적인 연꽃 무리와 맞닥뜨렸다. 오로지 연꽃뿐인 큰 연못. 이웃한 곳에서는 물에 젖은 수련의 꽃잎이 아직 몇 송이 피어있다. 연꽃은 물을 떨치고 일어나 키가 껑충하다. 꽃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연밥이 몇 개 연꽃의 잎 아래 우두커니 서 있었다. 물을 헤치고 들어가 견준다면 연밥은 내 어깨를 두드릴 것 같고, 연꽃잎은 내 얼굴을 보쌈할 것 같고. 문득 한 무리의 철새가 북쪽으로 날아가고 멀리 인가에서 저녁연기가 피어올랐다. 하늘은 쌀쌀했고 땅은 쓸쓸했다. 연꽃, 수련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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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