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지난 금요일 총선 후보 등록이 마감됐다. 본격 선거 국면이 열렸건만 분위기는 그렇게 달아오르지 않는 듯하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선 열기가 뜨거웠다. ‘안철수 현상’, 정당후보와 시민후보의 대결, ‘나꼼수 돌풍’이 중첩되면서 ‘닥치고 정치’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총선이 16일밖에 남아 있지 않는데, 아직은 미풍 정도만이 느껴진다.

왜일까. 그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정당정치와 시민정치의 거리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화두는 박원순 후보로 상징되는 시민정치였다. 시민정치의 부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안철수 현상이었다. 안철수 현상에 담긴 의미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었으며,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정당정치와 시민정치의 간격을 좁히는 시민 주도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문제는 이러한 간격이 다시 멀어졌다는 데 있다. 새로운 정치는 참신한 인물·비전·정책으로 실현될 수 있다. 보궐선거 결과, 여권에선 박근혜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했고, 야권에선 정당정치와 시민정치가 결합한 민주통합당이 등장했다. 여권과 야권은 인재 영입, 지역구 및 전국구 공천, 선거 정책 발표 등을 추진해 왔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성적표는 신통치 않아 보인다. 정치의 재건축을 요청했건만 재단장 수준에 그쳤다는 느낌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결과를 가져온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우리 정당의 단기적 속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인물의 영입, 비전 및 선거 프레임의 제시, 후보 선출 방식의 변화는 상당한 숙성 기간을 요구하는 사안들인데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 안에 이를 해결하려 하니 의미 있는 결실을 거두기가 처음부터 어려웠다. 여권의 경우 경제민주화를 내걸었건만 한낱 ‘선거용 수사’에 그쳤으며, 야권의 경우 국민경선이든 야권연대든 예견하지 못한 정치적 내상을 안게 됐다.

최근의 흐름이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정치의 주체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진보개혁세력의 경우 새로운 정치를 위한 시민 다수의 열망을 담은 비전과 프레임의 구축은 더없이 중요하다. 돌아보면 2004년 총선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거였으며, 2008년 총선은 뉴타운과 특목고로 대변되는 ‘욕망의 정치’ 선거였다. 그리고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참여와 연대로 상징되는 ‘시민정치’ 선거였다. 프레임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을 때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경쟁에서 최근 새누리당은 ‘이념 선거’의 프레임을 부각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 대 진보라는 이념 구도에서 총선이 치러지면 나름대로의 성과와 대선의 교두보가 마련될 것이다. 문제는 야권이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 또한 작지 않은 게 야권의 상황이다. 하지만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이번 총선은 2010년 지방선거에 이어 전국적 단위에서 치러지는 두 번째 야권연대 선거다. 우리 정치지형을 고려할 때 진보개혁세력에게 야권연대는 불가피한 최선의 정치적 선택이다.

 

야권연대의 가치는 ‘연대 속의 차이’를 승인하면서도 ‘차이 속의 연대’를 추구하는 데 있다. 그 일차적 목적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엄중한 심판에 있으며,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여는 진보적 정권의 창출에 있다. ‘이념 선거’에 맞서서 ‘연대 선거’, ‘심판 선거’, 무엇보다 중산층과 노동자계급 삶의 위기를 즉각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대안 선거’가 야권의 프레임이 돼야 한다.

오는 29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선거가 치러지는 4월11일 전날까지 총선은 절정에 도달할 것이다. 선거는 잠들어 있던 것들이 깨어나 모두 심판의 테이블 위에 오르는, 역사는 구조가 아니라 의지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을 생생히 체험하게 하는 순간이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빠른 때다. 야권의 일대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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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