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하면 좋은 점이 분명 존재한다. 누군가에게는 연애가 삶의 전부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좋다’에서 멈추지 않고 ‘그러니까 연애해’ ‘연애하지 않는 너는 불쌍해’로 넘어가는 것이 연애지상주의의 문제점이다. 나는 이 연결고리를 끊고 싶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를 모두 ‘무죄’로 석방하고 싶다.”

<연애하지 않을 자유>(21세기북스)의 저자인 이진송은 ‘행복한 비연애생활자를 위한 본격 싱글학’을 표방합니다. “내가 이 구역의 ‘홀로’다”라는 선언을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홀로는 “어떤 형태로든 연애하지 않는 비연애인구”를 말합니다. 이진송은 3년째 ‘비연애생활자’를 위한 독립잡지 ‘계간 홀로’를 펴내고 있기도 합니다.

이진송은 “연애는 발명되고 학습된 것으로서, 한국에서의 역사는 겨우 100년 남짓 되었고, 절대적인 것이거나 운명적인 것이 아니다. 연애는 때로는 자본주의와 공모하고, 때로는 자아 발견 욕구와 만나고, 때로는 국가 통치 정책과 공명하기도 하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개념”이라고 말합니다. 연애에는 ‘황금, 용모, 재지(才智)’라는 세 가지 조건이 개입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연애하지 않을 자유’는 연애의 자격을 다 갖춘 사람에게만 허용하지 말고 원하는 사람 모두에게 허용하라는 것입니다.

이진송이 진정 주장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연애를 가로막는 억압”일 것입니다. “그토록 연애하라고 등을 떠밀면서도, 정작 한편으로는 우리의 자유로운 사랑을 가로막고 착취하는 것들. 고용 불안정이나, 특히 성적 취향에 대한 억압, 비만 인구나 장애 인구에 가해지는 연애 금기…. 지금 이 순간도 너무나 뻔뻔스럽게 벌어지는, 이중의 억압들”로 말미암아 “너무나 많은 기회비용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가 있다. 사랑을 불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은폐하고, 그것을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돌려 비난하고 조롱하는 시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니까요.

‘미혼’은 결혼을 하지 못한 것이지만 ‘비혼’은 불안정한 결혼이라는 기반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사회운동가나 페미니스트, 또는 삶의 상처로 일시적인 반항심리에 젖어든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으로만 여겨졌던 비혼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한 책은 2009년에 출간된 <언니들, 집을 나가다>(언니네네트워크 엮음, 에쎄)입니다. 이 책에는 가족이라는 구조는 유지하면서 독립하고자 하는 사람들, 레즈비언 커플과 공동가족 등 ‘정상 가족’이라 여겼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유형의 가족, 지속가능한 비혼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때 저는 ‘비혼’이 과도기적 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생활의 발견이며 거대하게 저변을 넓혀가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굳어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완벽한 싱글>(김용섭, 부키)이라는 종족이 등장한 것은 2013년입니다. 싱글은 “연애 여부와 상관없이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지만 ‘완벽한 싱글’은 “자신이 싱글임을 자각하고 계획적, 자발적으로 싱글 라이프를 누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완벽한 싱글’은 “싱글이든 더블이든 대가족의 일원이 되든, 매사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선택하며 그 중심에는 항상 자신의 행복과 독립성, 자유라는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화려한 싱글’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헬렌 브라운의 <나는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이 좋다>가 등장한 1994년입니다. 이즈음 정보화와 세계화라는 새로운 거센 물결이 시작됐지요.

몇 년 뒤인 외환위기 직후에는 30~40대의 높은 학력과 경제력을 갖춘 ‘골드미스’가 등장해 화제가 되었지요.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지금 결혼이 아니라 연애마저 완벽히 거부하는 비연애 담론이 등장했습니다. 비연애주의자들은 인간이 아닌, ‘종이 인간’(만화의 캐릭터), 아이돌, 반려동물 등을 연애 대상으로 삼거나 엔터테인먼트 상품의 ‘덕후’(마니아)가 되어 “하루에도 수십번씩 천국과 지옥에 동시에 담갔다 뺐다 하기도 하는 덕질”하기에 바쁩니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모두가 ‘비연애 선언’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결국 인류의 종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만 할 수도 없습니다. 2016년 1월18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을 주관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은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에서 “인공지능·로봇기술·생명과학 등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이 향후 5년간 선진 15개국에서 일자리 710만개가 사라지게 하고, 신규 일자리 200만개가 새로이 창출되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서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전 세계 7세 어린이의 65%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일자리에서 일하게 될 전망”이라고 했습니다.

<노오력의 배신>(조한혜정·엄기호 외,

창비)에서는 “헬조선이 처해 있는 현실이자 삶의 조건이라면, 노오력은 지옥의 늪에 빠진 이들에게 할당된 몫”이라고 말합니다. 100%만 달성하면 합격이던 시대에서 벗어나 200%, 300%를 초과 달성해도 “삶은 발가벗겨지고 법 밖으로 추방”되는 “생존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배제와 추방이라는 두 죽음 사이의 선택”만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근대는 ‘하면 된다’의 노력으로 출발해 ‘할 수 있다’는 자기계발을 지나 ‘해야 한다’는 ‘노오력’으로 결국 삶을 파괴하는 파국에 도달”했습니다.

더구나 미래마저 불투명한 세상에서 자신이 지금까지의 노력으로 취득한 지식마저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는 세상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 아닐까요? 남들이 강권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만 빠지거나 말을 잘 듣는 동물에게만 헌신하는 것 말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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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