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지사의 지지율이 무서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보수 후보들의 지지율이 전혀 오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층 유권자들의 표심은 갈 곳을 잃었다. 본인의 애매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지지율이 높은 편이지만, 막상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을 임명하고 출마할 경우 불어닥칠 후폭풍은 간단치 않을 것이다. 황 대행이 그 후폭풍을 뚫고 당선될 꿈을 꿀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다고 본다면, 정치적으로 보이는 그의 행보는 대선보다는 다른 목표를 향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안 지사의 최근 지지율 상승은 갈 길 잃은 보수와 문재인 전 대표에게 불안감을 느끼는 중도층의 지지에 힘입은 바가 크다. 1987년 이후 모든 선거에서 야권을 항상 불리한 출발선에 세웠던 기울어진 운동장이 이번에는 실질적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은 유의미한 보수 후보가 없기 때문이지, 보수성향 유권자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안정적 진보’의 이미지를 착실하게 선점한 안 지사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혜택을 누리는 최초의 야권 후보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민주당 경선의 문턱을 넘을 가능성은 아직까지 매우 작다. 완전국민경선제와 결선투표제라는 변수가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할 경우 분노한 민심은 어느 정도 풀릴 것이고, 대선 판도는 크게 출렁일 것이다. 그러나 3월13일 전후에 후보를 확정하기로 한 민주당 경선 일정을 감안할 때, 세간의 예측대로 3월 초 탄핵인용이 이루어진다면 안 지사는 달라진 대선 판도의 이득을 챙길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 그렇다고 문 전 대표와 더불어 친노의 양대 적자인 그가 민주당을 탈당할 가능성도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본선에서의 높은 외연 확장성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진 가능성이란 결국 경선 이전에 지지율이 문 전 대표와 비슷한 수준으로 오르고 그것이 경선 투표자들의 결정을 바꿔놓는 것과 같은 이변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12일 광주 서구 쌍촌동 5·18민주화운동 학생기념탑에서 참배 후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까지는 선거공학적인 이야기들이다. 이번에는 우리 민주주의와 정치현실을 직시해보자. 최근 논란이 된 소위 ‘대연정론’ 이야기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화두를 던진 안 지사의 가능성이 매우 작기 때문에 오히려 편하게 말할 수 있다. 소위 ‘헬조선’을 운위하게 만드는 이 나라의 수많은 문제들 중 거의 대부분은 대결적 정치에서 시작됐고 합의제 민주주의의 성격을 강화함으로써 풀 수 있는 것들이다. 참여정부가 애써 마련했던 여러 개혁 ‘로드맵’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이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이미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승자독식을 위해 필사적으로 쟁패하는 정치로는 헬조선의 문제를 아무것도 풀 수 없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합의제 민주주의를 가진 나라들이 그렇지 않은 나라들보다 양극화, 실업, 고용률 등 다양한 지표에서 더 나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당장 개헌은 못하더라도 정치의 합의적 요소를 강화하는 것은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현실을 보자. 민주당이 집권한다고 가정할 경우 121석의 여당은 178석을 차지하는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그리고 무소속 의원들을 상대해야 한다. 국회선진화법하에서 법안 통과를 하려면 180석이 넘어야 하니 야당으로부터 적어도 59석의 협조가 필요하다. 국민의당이 호락호락 협조할 리도 없지만 그래봤자 38석이다. 이번 대선에서 후보다운 후보도 내지 못하고 몰락한 자유한국당이지만 여전히 의석은 94석인데, 이들은 대선을 통해 심판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발목을 잡을 것이다. 과거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에서 탄핵역풍 덕분에 제1당으로 출발했지만 실질적으로 와해되는 데 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상태로 2020년 총선까지 가야 한다. 그 중간에 2018년 지방선거가 있는데, 이때야말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사활을 건 총력전을 펼칠 것이고 보수 유권자들도 결집할 것이다. 그러니 설사 정권교체가 된다 한들 합의제 성격을 강화하지 않은 채 출범한 다음 정부가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일본 민주당의 전례를 보면, 진보정권 시즌 2가 실패할 경우 수권능력 제로로 낙인찍혀 두 번 다시 집권이 어렵게 될 수도 있다.

자유한국당도 포함될 수 있는 대연정은 안된다는 주장은 심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을 배제하기 위해 이처럼 중요한 의제를 논의조차 해보지 않는다는 것은 득보다 실이 너무 크다. 교체와 청산도 중요하지만 미래가 더 중요하다. 정권교체를 이루겠다고 말하지만 경천동지할 이변이 없는 한 정권교체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유능하고 지속가능한 차기 정부를 만드는 논의를 시작부터 걷어차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선거공학과 별도로, 진지하게 연정을 논의해보자.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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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