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에는 대형 문학행사가 둘이나 잇따라 펼쳐지고 있다. 하나는 작고 50주기를 맞은 시인 김수영의 삶을 회상하고 그의 문학을 다시 들여다보는 행사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베트남·몽골·팔레스타인 등 10개국의 문인과 한국 문인들이 참가하는 ‘제2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11월6~9일)이다. 나는 두 행사에 조금씩 관여가 되어 있는 데다, 지난 10월19일에는 충남 부여에서 진행된 신동엽문학제에서도 특별강연이라는 걸 했다. 그러다 보니 이 행사들 전체를 꿰뚫는 주제가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고, 특히 내 경우 젊은 날 김수영·신동엽 두 시인과 짧지만 날카롭게 맺어졌던 인연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알다시피 김수영 시인은 6·25전쟁 때 부득이하게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포로수용소를 거쳐 석방되었다. 이런 끔찍한 경험에다 유난히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였으니 김수영에게 1950년대의 냉전반공체제는 숨막히는 질곡이자 견디기 힘든 억압이었다. 따라서 우리 나이 마흔에 맞이한 4·19혁명은 당연히 그에게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기 이전에 무엇보다도 자신의 억눌린 인격에 주어진 해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무렵 그의 시들이 모두 혁명의 추이에 관련되어 있지만, 산문 중에서도 ‘책형대에 걸린 시’(경향신문 1960년 5월20일자) 같은 글은 김수영의 생애에서 4·19가 결정적 분기점이었음을 실감 있게 증언한다. 이로부터 작고하기까지 7, 8년 동안 그의 시적 사유와 창작활동은 우리 문학사상 유례없이 치열한 심화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문학행사들은 그가 이룩한 미학적·사상적·인간적 성취를 분석하고 그것을 변화된 현실 속에서 계승하려는 후배들의 새로운 모색이라 평가하고 싶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김수영보다 아홉 살 아래인 신동엽에게도 분단과 전쟁의 시련은 비켜 가지 않았다. 다니던 사범학교에서는 동맹휴학 사건으로 퇴학을 당했고 전쟁이 나자 악명 높은 국민방위군에 징집되어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병든 몸으로 귀향하다 배가 고파 생으로 잡아먹은 민물게 때문에 간디스토마에 걸려 결국 요절의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병고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겪은 고난의 아픔 너머를 상상했고 그것을 아름다운 시로 표현했다. 명작 ‘껍데기는 가라’는 50여년 세월을 건너뛰어 이제 남과 북의 온 겨레가 함께 애송할 날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신동엽 시의 진가를 공식석상에서 맨 처음 인정한 사람은 김수영이었다. 월평 같은 글에서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신동엽을 거론했고 평론 ‘참여시의 정리’에서는 “소위 참여파의 다른 어떤 시인보다도 확고부동한” 업적을 내놓는 시인으로서 신동엽의 작품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내게는 두 분의 관계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도 있다. 계간 ‘창작과비평’은 창간 3년째 되던 1968년 봄호부터 시를 게재하기 시작했는데, 김수영이 잡지의 자문에 응해 추천한 시인은 원로로서 김현승·김광섭과 신진으로서 신동엽이었다. 나는 그 무렵부터 주간인 백낙청 교수의 요청으로 편집을 거들게 되었다. 1968년 봄 창덕궁 돈화문 건너편 2층 다방에서 백 교수와 함께 신동엽의 신작시 5편을 건네받던 일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중의 한 편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은 올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진 문재인·김정은 두 정상의 세 차례 회담을 예견하고 쓴 듯이 생생하다. 말을 꺼낸 김에 한두 대목 읽어보자.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자다가 재미난 꿈을 꾸었지.// 나비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다가/ 발아래 아시아의 반도/ 삼면에 흰 물거품 철썩이는/ 아름다운 반도를 보았지.// 그 반도의 허리, 개성에서/ 금강산 이르는 중심부엔 폭 십리의/ 완충지대, 이른바 북쪽 권력도/ 남쪽 권력도 아니 미친다는/ 평화로운 논밭.”(제1~3연)

“꽃 피는 반도는/ 남에서 북쪽 끝까지/ 완충지대./ 그 모오든 쇠붙이는 말끔히 씻겨가고/ 사랑 뜨는 반도,/ 황금이삭 타작하는 순이네 마을 돌이네 마을마다/ 높이높이 중립의 분수는/ 나부끼데.”(제7연)

술을 마시고 잔 어젯밤의 꿈,이라고 둘러댄 것은 그 시절 군사정권의 검열을 의식한 한갓 둔사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에 담긴 메시지를 시의 형식으로 위장한 중립화통일론으로만 보는 것은 편협한 도식주의에 가깝다. 물론 신동엽의 문학에 정치적 이상이 배제된 것은 아니다. 50년 전 놋쇠하늘 밑에서 시인들이 갈망해 마지 않던 표현의 자유는 민주화 이후 시대인 오늘날에도 국가보안법의 통제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동엽이 꾸었던 꿈이 이제 실제상황 속에서 불가능의 철조망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며칠 전 판문점 비무장화 합의에 따라 남과 북의 경비병력이 철수한 것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지난 9월19일 능라도 5·1경기장에서 15만 평양 시민을 앞에 두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 연설의 다음 대목을 떠올리면 시인이야말로 바로 시대의 예언자임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오늘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와 무력충돌의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조치들을 구체적으로 합의했습니다. 또한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칼럼이 신문에 나가는 오늘부터 나흘간 광주에서 열리는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을 각별한 눈으로 보게 된다. 페스티벌 참가 작가들의 소속국가는 대부분 한국과 험악한 수난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식민지, 전쟁, 분열, 독재, 가난은 우리만 겪은 고통이 아니었다. 어떤 나라, 어떤 지역에서는 제국주의 강대국의 침략과 수탈이 지금도 끝나지 않고 있다. 그 제국주의의 타도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 없는 세상’을 가져오기 위해서, 모든 부문에서의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실현을 위한 지혜를 모으기 위해서 아시아의 작가들이 입을 열기로 한 것이다. 이번 문학페스티벌 조직위원장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이 행사가 단지 문학인끼리만 즐기는 지역축제가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를 향한 새로운 문명전환의 호소임을 깨닫게 한다.

“아직도 세계문학은 구미 중심이다.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것은 옳지 않다. 아시아 문학인들끼리는 모이는 것이 의미가 큰 이유다.”

<염무웅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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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