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화체육관광부의 ‘새 문화정책 준비단’ 단장을 맡아 국가 문화정책의 틀을 다시 짜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비극적인 블랙리스트 사태를 딛고 다시 대안적인 문화정책을 세우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예술인이 주체가 되어 블랙리스트의 진실을 철저하게 밝혀내는 일과 함께 아픔을 이겨내고 미래로 향하는 문화정책을 구상하는 일은 시대적 소명이 되었다.

혁신해야 할 수많은 국가 문화정책의 과제 중에 예술인 복지정책은 작은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국가가 예술가를 바라보는 관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예술인 복지정책이 블랙리스트라는 국가검열의 짝패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상’이 아닌 ‘권리’ 그 자체이고, 예술인 자립을 위한 최소한의 물적 토대이다. 준비단 내 예술인복지 분과에서 현재 예술인 고용보험, 예술인 주거, 예술인 금고, 예술가 사례비, 예술인 사회참여 확대와 매개자 교육 등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과제들을 실제 사업으로 이행시키기 전에 먼저 생각할 것은 예술인 복지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다.

예술인 복지정책의 패러다임은 먼저 구제에서 권리로 바뀌어야 한다. 예술인 복지정책을 가난한 예술가를 구제하는 정책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예술인 복지정책이 생활환경이 어려운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지원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제의 정당성이 가난한 예술가의 ‘궁핍’을 해소하는 것에 있다면, 그것은 아주 협소한 시각에 그칠 수 있다. 예술인의 복지는 창작활동을 위한 환경과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창작의 권리와 함께 동일선상에서 권리로 인정되어야 한다.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의 보편적 가치가 국민의 권리이듯이, 예술가의 복지 역시 사회적 가치를 가진 예술가들의 창작활동과 연계된 특수한 권리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새로운 예술복지 정책은 예술가를 구제하는 정책을 넘어 창작의 생활환경을 개선하여 예술가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예술인 복지정책은 또한 사후적 대응에서 선제적 대응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예술인 복지정책은 어느 예술가의 불행한 죽음이 있고 나서야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사회적 재난이 발생하고 나서 사건을 수습하는 차원에서 대책을 강구하는 방식과 같다. 같은 복지정책이라도 비극적 사건을 수습하기 위한 대책 마련의 목적보다는 행복한 사건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한 선제적 투자의 목적이 예술가들에게는 더 어울리고 필요한 것이 아닐까? 예술인 복지정책은 예술가의 창작활동에 따른 ‘정산’이 아니라, 창작활동의 조건을 마련하는 ‘투자’가 되어야 한다.

예술인 복지정책은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관리 장치에서 예술가와 함께 상생하는 관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예술인 복지정책이 가난한 예술가들의 불만을 해소시키고, 공급자 과잉상태의 예술가들을 관리하는 장치로 활용된다면, 그것은 가장 불행한 결과를 야기할 것이다. 예술인 복지정책이 예술인 인구와 활동을 통제하는 일종의 ‘통치성’의 관점에서 사회적 관리의 장치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예술인들을 ‘지원’과 ‘혜택’으로 권력의 장치 안으로 가두려 했던 과거 독재정권의 문화정책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예술인 복지정책은 사회적 관리장치가 아니다. 그래서 아무리 복지정책이라고 해도 국가가 예술인들과의 충분한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만들어서 ‘혜택’을 누리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예술인 복지정책이야말로 ‘소통’과 ‘협치’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왜냐하면 예술인들의 사정은 예술인 본인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예술인 복지정책은 ‘예술가를 위해’ ‘예술가와 더불어’ ‘예술가 모두가’라는 이 세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그것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을 최소 관리하는 정책에서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복지정책을 함께 만들어가는 ‘협치’의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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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