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매미는 언제쯤 귓전을 두드릴까, 생각하다가 그보다 먼저 개미와 나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했다. 순결한 지면에 먹물로 개미, 개미, 개미라 쓰면 검은 행렬이 꼬물꼬물 어디로 진군하는 듯하다. 어린 시절 길에서 만나면 그냥 꾹꾹 눌러 밟기가 일쑤였다. 아파트에는 개미가 없는 줄로 알았지만 이사하고 방바닥을 쓸면 한두 마리의 개미가 쓰레받기에 얼씬거렸다.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창문 너머로 휙 던져버린 경험이 여러 번이다.

ⓒ이해복

요즘 개미에 관해 실감나는 게 있다. 그것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발짝 이내에서 개미와 맞닥뜨린다는 사실이다. 이는 내가 완벽하게 그들에게 포위된 형국임을 뜻하는 게 아닐까. 노벨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무크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의 첫 문장은 파격적이되 명징하다.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뉘라서 주인공의 저 운명을 피할 수 있으랴. 언젠가 나도 그 신세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올 손님은 아마 개미일 것이다. 혹 오래전 나에게 당했다가 몇 생을 거듭난 그 녀석일지도 모를 일!

평창을 찾았다가 정선으로 넘어가는 어느 길목에서 희귀한 꽃을 만났다. 물소리가 은근한 공터에 차를 대고 개울을 건너니 멸종위기식물 안내문과 철조망이 있었다. 왕제비꽃 자생지였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제비꽃은 종류가 많다. 제비꽃만을 다룬 단행본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니 제대로 알기가 어려운 게 제비꽃의 세계이기도 하다. 제비꽃은 원줄기의 유무에 따라 크게 구분된다. 대부분의 제비꽃이 앉은뱅이 방석처럼 지면에 도톰하게 퍼져 있는 것에 비해 왕제비꽃은 원줄기가 뚜렷하다. 흰 꽃은 잎의 겨드랑이에서 나온다. 제비꽃 중에서 키가 가장 커서 무릎을 때릴 정도이다. 그래서 왕을 이름 앞에 얹었나 보다.

왕제비꽃은 그 경계를 간단히 뛰어넘어 바깥으로 진출해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왕제비꽃을 보는데 개미 한 마리가 꽃과 잎을 드나드는 게 아닌가. 제비꽃을 퍼뜨리는 데 개미가 큰 역할을 한다. 개미와 나는 오늘 또 이렇게 얽혔다.

내가 매미를 기다리듯 성질 급한 개미는 벌써 씨앗을! 왕제비꽃, 멸종위기 2급,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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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