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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정국운영 기조가 변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내에서도 제기되었다. 소통의 필요성이 많이 언급되었다. 그렇지만 소통을 위한 첫 번째 시도였던 지난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의 대통령 발언은 국민의 기대에서 또 빗나갔다. 총선 결과를 놓고 대통령은 양당체제와 국회에 대한 심판이었다고 말했다. 비판의 소리가 컸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대통령의 말처럼 총선 결과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청와대와 여당에 대한 심판이라는 거의 논란이 없는 사실까지 무시하는 대통령의 태도를 보면 앞으로도 어떤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하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내외의 위기를 고려할 때, 이는 심각한 상황이다.

총선 과정에서 꽤 많은 정치인이 국민 앞에서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릎도 꿇고 삭발도 했다. 막상 왜 사과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일종의 무조건적인 사과인데, 많은 경우 이는 진정한 사과이기보다는 눈앞의 곤경을 모면하기 위한 일시적 방편에 불과하다. 부부싸움에서도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일단 잘못했다고 치자’라는 식으로 말하고 넘어가려는 태도가 상대를 더 화나게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뭐를 잘못했는지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진정성이 있는 사과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어떤 잘못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신이 이런 정치인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과시했다. 우리 국민은 왜 박 대통령으로부터 진정성이 있는 사과를 듣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이쯤 되면 박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철학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고대 정치철학 중에 권력자의 이러한 행태를 정당화시키는 논리가 있다. 한비자(韓非子)의 “명군의 도는, … 공이 있으면 군주의 현명함이 있다고 하고, 과가 있으면 신하가 그 죄를 지게 하며, 그럼으로써 군주의 명예는 궁해지지 않는다(有功則君有其賢,有過則臣任其罪,故君不窮於名)”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법가의 권력관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이 구절은 중국에서 전제주의적 전통을 만들어낸 뿌리이다. 이 권력관 아래에서 군주의 사과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주자(朱子)는 이러한 권력관을 “군주를 귀하게 하고 신하는 천하게 만든다(尊君卑臣)”고 비판했다. 군신관계에서만 보면 군주를 귀하게 만든다는 한비자의 권력관에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 신하들이 기득권 구조에 매여 있는 경우에는 군주의 지위를 강화해야 민을 위한 통치가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행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그렇지만 이를 위해 신하를 천하게 만들 필요까지는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권력관을 국민과의 관계에 적용하는 경우이다. 법가의 권력관이 중국 전제주의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이기는 하지만 만약 이것이 전부였다면 중국의 전통적 정치제도가 그렇게 오래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다. 군주와 민의 관계에 대한 인식에는 법가보다 유교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유교적 전통은 하늘 혹은 민의 이름으로 군주의 자의적 통치를 막고 또 군주에게 민을 중시하는 통치를 요구했다. 가뭄과 같은 천재가 있을 때에도 이를 군주의 부족한 덕과 연관시키고 군주의 반성과 수양을 요구했다. 우리를 포함한 유교 영향을 받은 사회에서 이 전통이 꽤 강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치지도자라면 국민의 목소리를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함이 마땅하다. 이제는 하늘이 아니라 민이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유일한 원천이다.

그럼에도 상황이 계속 거꾸로 흘러가니 우리 국민의 답답함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예상을 크게 벗어난 총선 결과도 이러한 답답함의 표현이다. 총선 전이라면 대통령이 국회에 대해 이런저런 불만을 표시할 수 있지만 총선 이후에도 국회를 탓하는 것은 뭔가 한참 잘못되었다.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운 것은 그것이 자신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자신을 천하게 만들 수 있다는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권력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요구되는 리더십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이대로라면 대통령 스스로도 불행해진다.

이제라도 남을 탓하지 말고 자신을 먼저 탓하고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기대한다. 하루아침에 큰 변화를 보여주지 않아도 좋다. 여당 등의 비협조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세월호 특별법을 연장하는 일처럼 의지만 있으면 변하고 있다는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일들은 많다. 귀해지고 싶다면 먼저 국민을 귀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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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