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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4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1987년,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더없이 평온한 날들이었다. 1년쯤 다녀보니 학교란 곳도 적응됐고 선생님도 친구들도 좋았다. 골목문화가 살아 있어서 학교가 끝나면 동네 아이들끼리 해가 지도록 함께 놀았다. 이웃엔 영미 언니가 살았다. 광주가 고향인 언니는 20대 중반으로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혼자 자취생활을 했다. 언니는 우리집을 자주 왕래하며 가족처럼 지냈다. 늘 잘 웃고 다정한 언니가 진짜 언니처럼 좋았다.

그해 늦가을 어느날, 언니와 등굣길을 함께했다. 담벼락엔 대통령 후보들의 선거벽보가 붙어 있었다. 다른 후보들은 얼굴사진을 커다랗게 썼는데 1번 노태우 후보만 엄지손가락을 세운 팔을 쭉 뻗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복을 입은 3번 김대중 후보는 혼자 흑백사진이었다. 조금 무서웠다. 2번 김영삼 후보와 4번 김종필 후보도 있었지만, 어떤 사진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언니가 물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면 좋겠어?” 당황스러웠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다. 다시 벽보 사진을 슬쩍 봤지만, 맘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 언제나 근엄해보였던 전두환 대통령의 얼굴이 떠올랐다. “글쎄요. 그냥 하던 사람이 계속했으면 좋겠는데….” 언니는 말없이 웃었다.

몇 달 뒤 늦은 밤, 이불 속에서 잠들었다가 깼다. 어머니와 언니가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영미 언니는 군인들이 방 안까지 총을 들고 왔는데 옷장에 숨어 겨우 살았다고 했다. 꿈인가, ‘주말의 명화’ 속 이야기인가 싶었다. 다시 잠이 들었다. 언니는 얼마 후 결혼했고 고향으로 갔다.

투표권을 갖게 되고 선거를 경험할 때마다 그날 영미 언니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광주에서 나고 자라 계엄군의 살인진압을 경험한 언니에게 1987년의 대선은 얼마나 절실했을까. 광장에 모여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낸 시민들에게 그해 대선은 어떤 의미였을까.

지난 가을과 겨울, 주말마다 촛불집회에 나갔다. 절반은 관찰자의 시선으로 참여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거리로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지방에서 입석기차를 타고 온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과 딸에게 우리가 원하면 잘못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나왔다”고 했다. 한 초등학생은 “자꾸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어른들끼리 ‘초딩 같다’고 하는데 초딩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한 아이돌 팬클럽은 “우리가 나라 꼴 말고 덕질(팬 활동)에만 신경쓸 수 있게 해달라”고 외쳤다. 안국동에서 광화문으로 넘어가는 길에선 한 무리의 아이들 앞에 한 여성이 멈춰 섰다. “저는 성소수자 아이의 어머니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차별받지 않고 꿈꿀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주고 싶어 나왔습니다.”

대선후보 TV토론회를 보면서 광장에 나왔던 많은 시민들은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 실망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 되든 2017년은 ‘우리가 만든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는 대통령을 합법적으로 해고했으며, 유세 기간 동안 후보들이 던진 말은 실시간으로 ‘팩트체킹’ 됐다. 여전히 가짜뉴스와 막말이 떠돌지만 힘은 과거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다. 더 이상 몇몇 사람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었다.

30년 전 영미 언니가 왜 “전두환은 나쁜 대통령이야”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종종 궁금했다. 그냥 어린아이에게 설명하기 힘들어서였겠거니 생각했지만, 요즘은 다른 이유가 짐작된다. 분노를 물려주기 싫어서…. 나도 분노 대신 의미를 새기고 싶다. 닷새 남은 대선을 어떤 의미로 만들 것인가는 후보들이 아니라 시민들이 결정한다. 소중한 한 표를 던지고 엄중히 감시하겠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으니까.

장은교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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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