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건 컴퓨터야! 빌어먹을 평범한 컴퓨터!”

“…랩톱을 쓰셔야겠죠?” “아니. 난 ‘랩톱’을 원하는 게 아냐. 컴퓨터를 원한다고.”

“랩톱이 바로 컴퓨터예요.” “너 내가 그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지?”

태블릿이 ‘컴퓨터냐 아니냐’를 놓고 매장 직원을 진땀나게 하고 있는 이 남자는 <오베라는 남자>의 깐깐한 원칙주의자 ‘오베’다. 자신이 보기엔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젊은이들에게 밀려 40여년을 일한 회사에서 해고당한 오베는 랩톱이 컴퓨터를 가리키는 또 다른 단어임을 짐작 못한다. 태블릿은 키보드가 없어도 화면에서 조작 가능하다는 말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다.

이 대목을 읽었을 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에게도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상상하지는 않았다. 제품 설명을 이해 못해 물건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든다며 툴툴대는 ‘구닥다리’는 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계속 그런 착각 속에 살기란 쉽지 않다. 나이를 더할수록 내겐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하나둘씩 늘어남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때때로 불안해진다. 이대로 나이를 더 먹으면 어떻게 될까 하고.

‘연령차별’(에이지즘)이라는 말이 있다. 나이에 근거한 사회적 차별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나이 들 때 찾아오는 변화를 수치스러워하도록, 무수한 걸림돌을 용인하도록 부추기는 사회에 살고 있다. 노인에 대한 연령차별은 자신 역시 나이 들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데서 출발한다. 문제는 연령차별이 교묘하게 내면화돼 있다는 것이다. 성차별·인종차별과는 달리 나이 들었다고 무시하는 데는 “너 몇 살이야?”라며 어깃장을 놓는 것 말곤 별 도리가 없다. 물론 나이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노인들은 연령차별의 수혜자일 수도 있다. 이는 세대 간의 반목을 조장한다. 노인들 뒷바라지하느라 젊은 세대 허리가 휠 것이란 우려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나이 든 세대가 겪는 궁핍과 적대감은 결국에는 우리 모두에게 닥칠 일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다.

고령화를 피할 수 없게 된 지금, 세계는 노인을 위한 도시를 건설 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9년 고령친화도시 조성을 위해 ‘국제고령친화도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스위스 제네바, 미국 뉴욕, 일본 도쿄, 중국 상하이 등 37개국 500여개 도시가 회원도시로 가입했다. 한국은 서울시가 2013년 처음 가입한 데 이어 전북 정읍, 경기 수원, 부산 등이 회원도시로 가입했지만 아직 개념조차 생소하다.

미국 등에서는 이미 고령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사업이 활발하다. 뉴욕은 일부 구역을 노령자를 위한 개발지구로 선정해 상점 안내판이나 메뉴판 글자를 크게 인쇄하는 등 사소한 것부터 횡단보도 보행 신호 시간 연장 등 고령층을 배려한 인프라 구축을 시도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시범 사업으로 선보인 고령 친화상점 ‘오래오래’도 이와 비슷하다. 상점 출입구 턱을 없애고, 돋보기나 지팡이 거치대 등의 물품을 비치했다. 인근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는 속도를 늦추고, 지하철 노선 안내도와 지도 크기는 키웠다. 서울시는 올해 고령친화 상점을 더 늘릴 계획이지만 갈 길이 멀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누구나, 공평하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이 듦에 대해 ‘프로불편러’가 되자. 좌석에 앉기 전 버스가 출발하려고 하면 기사에게 기다려 달라고 말해보면 어떨까. 프랑스의 사상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일찌감치 “한 인간이 노년에도 인간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 사회는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이 항상 인간으로 대우받는 사회여야 한다”고 했다. 연령차별은 우리 자신의 미래에 대한 편견이다. 우리 안에는 노인이 산다.

<전국사회부 ㅣ 이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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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