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혼자 유럽을 여행했다. 그때 알았다. 한국의 모든 것을 다 버려도 단 하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음식이라는 걸. 전 세계 미식가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나라, 이를테면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어찌나 한국 음식이 그립던지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식당 음식으로 배를 양껏 채웠는데도 늘 뭔가 허기진 느낌이었다. 정말 한국의 음식만큼 그리운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어쩔 수 없이 한국의 가족들에게 몰타로, 이탈리아로, 부다페스트로 한국 음식이나 재료들을 공수받아야만 했다. 당연히 그때부터 한국 음식이 그리우면 닭볶음탕이며 삼겹살, 김치찌개, 비빔밥 같은 걸 직접 만들어 먹고 또 때로는 현지의 친구들과 작은 파티를 열며 “이게 바로 한국의 매운맛이다. 어떠냐? 죽이지?” 하며 자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다가 바르셀로나에 가서 알았다. 일식이나 태국 음식에 질린 유럽의 미식가들에게 이제 한국의 음식만큼 매력적인 미식의 신세계는 없다는 걸.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그는 울적함을 평생의 기질처럼 달고 사는 영국인이었는데 어느 날 내게 미국에 상륙한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을 무슨 신의 재림인 양 소개한 ‘뉴욕 타임스’의 기사를 보여주며 ‘도대체 두 번 튀긴 닭’이 과연 어떤 맛이냐고 물었다.

“아주 바삭하지. 게다가 그냥 마일드한 프라이드 치킨과 한국 특유의 매콤한 양념을 곁들인 두 가지 스타일로 즐길 수 있어. 두 가지 스타일을 반 마리씩 섞어 먹을 수도 있고.” 그러자 아시아 음식 열성 팬인 마이클이 진심으로 침을 흘리며 먹고 싶어 했다. 뭐 레시피가 필요 없을 정도로 쉬운 요리니 못해 줄 것도 없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먹어온 입의 감각에 따라 있는 양념으로 대충했다. 닭 조각에 칼집을 넣어 두 번, 심지어 세 번 튀긴 후 고추장에 고춧가루, 후추, 통깨, 꿀, 마늘에 양파즙까지 섞어서 양념 소스도 만들었다. 웁스, 그랬더니 이 남자 거의 ‘천국의 맛’이란다. 하기야 영국인들이 늘 먹는 그 느끼하다 못해 고도비만으로 이끄는 악당 ‘피시 앤 칩스’에서 버스 터미널 맛이 난다면 내가 만든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은 정성이 들어간 나름 ‘전라도 여자 손맛’이니 천국은 천국이겠지.

최고의 슬로푸드, 사찰음식_ 경향DB

그때부터 요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내 손으로 뚝딱 만든 한 그릇의 음식으로 누군가에게 ‘천국’을 선사할 수 있다니, 이보다 더 기쁘고 만족스러운 일이 있을까?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혼 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을 정도로 우울증이 심각한 여자 후배 둘을 내가 사는 평창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곤 먹였다. 2박3일 동안 다섯 끼를 해먹였다.

“언니, 밥과 우울증이 관련이 있는 것 같아. 틀림없이…. 나 언니랑 언니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있으니까 약 안 먹어도 마음이 평온하고 좋아. 특히 아침밥이 중요한 것 같아. 아침을 안 먹으면 하루종일 기운도 없고 기분이 엉망진창이거든. 그러니까 일종의 기원이랄까? 내 우울증의 기원 말이야. 그게 먹는 즐거움을 모르고 산 데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유진 오닐이 아침밥을 먹었다면 그렇게 빨리 안 죽었을 것 같기도 하고.”

마법 같은 일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전화해서 이런 말을 쏟아내던 후배였다. “언니, 언니는 왜 살아요? 나는 내 자식을 자살한 엄마의 아들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겨우 살아요. 밥도 딱 그만큼만 먹어요. 죽지 않을 만큼만…. 그러니 당연히 밥맛도 모르고.” 그랬던 그녀다. 그런데 엄마가 점심으로 만들어 준 잔치국수를 한 그릇 뚝딱 비우더니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언니 나 여기 와서 해답을 얻은 것 같아. 우울할 이유가 없어. 이제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것 같아.” 너무도 갑작스러운 변화라 나조차도 믿기지 않았다. 요리에는, 사랑이 담긴 한 그릇의 음식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믿어왔지만 그 힘이 이렇게 강하고 전복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19세기 미식가 브리아 샤뱌랭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미각을 만족하지 못하면 결코 완전하게 행복해질 수 없다.’ 맞는 말이다. 나는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서 먹는다. 물론 무엇을 먹는다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누구와 같이 먹는가?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혼자 먹으면 맛이 없다. 하지만 같이 먹으면 국수 한 그릇도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변화시키는 연금술과 같은 신비한 힘’을 발휘한다. 우울증 환자들에게 권한다. 다이어트는 금물이다. 우울증 환자 중에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 건 다 그놈의 다이어트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침밥이 먹기 싫다면 사과 한 알을 먹으라. 그게 정신과 의사의 처방전보다 낫다. 그리고 혹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친구나 가족이 있다면 함께 자주 음식을 만들어 먹으라고 권한다.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나누어 먹는 행위 안에는 사랑이 있고, 사랑이 충족되면 우울이 들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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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