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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가벼운 형량으로 풀려나자 그를 한 해 넘게 추적하여 찔러 죽이고 자수한 형제가 있다는 보고를 들은 정조는, 이들을 극찬하고 오히려 숨은 인재로 인정했다. 효성을 권장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충동적인 보복이 아니라 치밀하게 준비하고 오랜 시간 공력을 들여 복수를 완수했다는 점을 높이 산 것이다. 집요한 복수 이야기는 동서고금 많은 서사의 뼈대를 이루어 왔다. 자신을 죽도록 때리고 거적에 싸서 측간에 내던져 소변을 맞게 한 위제를 천신만고 끝에 죽여서 그 두개골로 요강을 만들어 썼다는 범저의 섬뜩한 이야기도 있다.

철저한 복수만이 원수를 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원수를 은혜로 갚는 길도 있다. 출세한 한신이 옛날 자신을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게 만든 동네 무뢰배를 찾아서 등용한 것을 작은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원한이 뿌리 깊고 지속적일 경우, 이는 인지상정을 초월한 종교적 신심이 아니고서는 실천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원수를 은혜로 갚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질문에 공자는 “그럼 은혜는 무엇으로 갚을 건가? 원수는 ‘직(直)’으로 갚고 은혜는 은혜로 갚아야지”라고 답했다. 이를 원수 역시 일반인과 똑같이 공평무사하게 대해야 한다고 풀이한다면, 원한은 마음속으로만 품고 복수는 일절 하지 않아야 옳을 것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17세기 문인 김창협은 복수하는 것이 정당한 상황에서는 복수하고 부당한 상황에서는 복수하지 않는 길도 있다고 했다. 동한 때 인물인 갑훈은 소정화와 원한이 있었는데, 소정화가 부당하게 죽임을 당하게 된 상황에서 그를 구해주었다. 그러나 뒤에 소정화가 감사의 인사를 올리려 하자 여전히 원수로 대하고 만나주지 않았다. 정당한 상황이라면 복수하는 것이 옳지만 공적인 일에서는 상대의 능력을 인정하고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진정한 ‘직’의 의미라는 것이다.

우리는 크고 작은 서운함과 용서하기 힘든 미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복수 이야기들에 우리가 여전히 열광하는 것도, 그것을 통해서나마 대리만족하고 싶은 욕망 때문일 것이다. 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정국에서는 피아의 구분이 수시로 뒤바뀌며 숱한 정적(政敵)들을 낳는다. 원수를 은혜로 갚거나 원수 앞에서 공평무사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대의를 위한 자리에서만큼은 사적인 원한을 덮어두고 함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시대에 협치가 절실한 이유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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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