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객관적으로 ‘옳은 것’이 있을까?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따라 옳고 그름의 기준이 정해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도 반드시 옳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은 일부 몰지각한 과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기적’이며 ‘이타적인 행동’은 자신이 나중에 도움이나 인정을 받기 위한 ‘호혜적 이타주의’라고 치부해버린다. 만약 옳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고대 인도의 위대한 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arata)’에 전설적인 유디스티라 왕과 그의 네 동생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유디스티라, 비마, 아르주나, 나쿨라, 사하데바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한 여인 드라우파디와 결혼한다. 다섯 형제와 그들의 아내 드라우파디는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준비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던 지상의 왕국을 버리고 천상으로 들어가기를 꿈꾼다. 그들은 먼저 히말라야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곳엔 하늘로 가는 마차가 숨겨져 있다.

가장 먼저 포기한 사람은 드라우파디다. 비마가 형 유디스티라에게 묻는다. “왜 드라우파디가 포기했지요?” 그러자 유디스티라는 추락하는 드라우파디를 보지도 않은 채 말한다. “그녀는 영웅 아르주나만 사랑했지. 덕스럽지 않아.” 드라우파디가 천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자신 앞에 가로놓인 작은 산을 정복해야만 했다. 그 산은 다섯 남편들 중 아르주나만 사랑한 정욕이었다. 그것을 자신의 ‘덕(德)’으로 정복해야 하는데, 평상시 덕스럽지 않고 감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등산할 수 있는 다리 근육이 없었다.

그다음에 추락한 자는 사하데바다였다. 비마가 “그가 왜 추락했어요?”라고 묻자, 유디스티라는 떨어지는 사하데바다는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해서 걸으며 말한다. “그는 자신이 똑똑하다는 자만심 때문에 추락했지.” 사하데바다는 자신이 이해한 사소한 지식을 최고라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이 착각을 자만심(自慢心)이라 부른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이유는 그가 자신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나쿨라가 추락했다. 비마가 다시 그가 떨어진 이유를 묻자 유디스티라는 이번에도 매정하게 대답한다. “그는 자신의 생김새를 감탄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추락했지.” 나쿨라는 자신이 가장 잘생겼다는 편견을 갖고 살았다.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주위 사람의 기준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파괴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스스로 아름답다고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후에 아르주나가 추락한다. 비마가 슬픔에 잠겨 무엇이 그를 추락하게 만들었는지 묻자, 유디스티라는 꿈쩍도 하지 않고 걸으면서 말한다. “아르주나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해서 추락했지.” 영웅은 완벽한 영웅이 되려고 매일 수련하는 길 위에 서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제 유디스티라와 비마만 남았다. 비마는 힘이 장사며 요리사이기도 했다. 유디스티라는 “너는 굶어 죽는 사람들을 생각하지도 않고 맛있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었구나”라고 말한다. 비마도 더 이상 걷지 못하고 추락한다.

유디스티라가 나무 밑에서 외로움과 추위와 굶주림으로 떨고 있었다. 갑자기 개 한 마리가 나타나 줄곧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 개는 아마도 인도에서 발견된 고유종인 ‘파리아(Pariah)’일 것이다. 이들은 함께 히말라야 정상에서 하늘로 가는 인드라의 전차를 찾아 헤맨다. 그들은 눈보라 치는 가파른 바위의 갈라진 틈, 가시덤불로 가로막힌 장소, 만물을 한순간에 삼키는 시커먼 늪지대를 샅샅이 뒤졌다. 어느덧, 유디스티라와 개는 형제가 되었다. 유디스티라가 먹을 것을 찾으면 개에게 주고, 개가 찾으면 유디스티라에게 주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찾지 못하면 함께 굶었다. 이들의 외로움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했다.

개가 유디스티라를 쳐다보고 무엇을 발견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인드라의 전차가 정박된 비밀의 장소를 발견한 것이다. 둘은 함께 그곳으로 달려간다. 하늘로 가는 인드라의 전차가 그 위용을 드러낸다. 그들이 전차로 가까이 가려는 그 순간에, 전차 안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바로 인드라 신의 목소리다. 인드라 신은 숭고하고 용맹스러우며 지혜로운 유디스티라와 그의 신복인 못생긴 개를 바라본다. 그는 유디스티라가 보여준 인내와 지혜, 그리고 개에 대한 배려를 찬양한다. “네가 마침내 도착했구나!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어서 내 전차를 타고 하늘로 가자!”

크리쉬나는 힌두 경전 '마하바라타' 등의 주인공으로 인도에서 가장 사랑받는 신 중의 하나다._경향DB


유디스티라와 개는 함께 인드라의 전차에 승선하려 한다. 바로 그때 인드라는 손을 들어 그들을 막는다. “뭐하는 짓이냐! 개를 데리고는 절대 하늘로 갈 수 없다. 모든 존재가 하늘로 가는 것이 아니다. 네 개는 늙고 야위었으며 쓸모없는데, 너는 왜 이 개를 데리고 가겠다고 말하느냐? 내 하늘엔 신도 사람도 감히 갈 수 없는 곳인데. 저 개가 쉴 자리가 하늘엔 없다.” 유디스티라의 개는 멈춰 서서 그의 발 위에 머리를 조아린다.

유디스티라는 한참 동안 개를 바라보고는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인드라 신에게 말한다. “죄송하지만 제 개가 같이 못 간다면 저는 뒤돌아 다시 산을 내려가겠습니다. 이 개는 저의 가장 충직한 동반자였습니다. 항상 저를 도왔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따랐습니다. 천상에서의 기쁨은 제가 개를 잃은 슬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개는 제 아내나 동생들보다 더 낫습니다. 제 개가 하늘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면 저도 없는 것입니다.” 유디스티라는 자신이 힘들게 올라온 가파른 산길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산 아래로 개와 함께 내려가기 시작한다.

인드라 신이 소리쳤다. “멈춰라! 유디스티라여! 나는 너처럼 고귀한 인격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 개는 너의 인격의 근원인 ‘다르마(Dharma)’다. 이것이 너의 마지막 시험이었다. 너는 하늘로 올라갈 자격이 있다.” 그 순간, 개는 다르마 신으로 변신해 유디스티라를 축복해주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의로움에 헌신하는 다르마! 그 근원이 바로 개였다. 유디스티라는 결국 인드라의 전차에 올라 승천한다.

개가 상징하는 ‘다르마’는 인간의 옳음이다. 그 길은 유디스티라가 산 정상에 오르기까지 보여준 용기, 지혜, 정의가 아니다. 자신의 양심이 자신에게 해가 되더라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내적인 훈련이자 원칙이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터무니없고 손해만 보는 자신 안에 숨겨진 양심적인 행동이 바로 하늘나라로 가는 전차에 올라탈 수 있는 차표다. 아니, 지상을 하늘나라로 만드는 힘이다.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지난 칼럼===== > 배철현의 심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갈래 길  (0) 2015.10.15
어두운 숲속  (0) 2015.10.02
유디스티라의 개  (0) 2015.09.03
착함  (0) 2015.08.20
새끼 거북이의 임시 치아  (0) 2015.08.02
현관(玄關)  (0) 2015.07.1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