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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만 해도 가장 경탄할 만한 상업 공간으로 라스베이거스의 베네치안호텔이 꼽혔다. 그곳은 라스베이거스의 다른 호텔들처럼 호화로울 뿐만 아니라 특유의 모방과 복사라는 측면에서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경지에 달해 있다. 베네치안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건축물과 장식을 거의 똑같이 옮겨 왔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탈리아의 진짜 베네치아는 아예 잊으라. 베네치안호텔이 한결 낫다”고 말할 정도였다. 리알토 다리나 콘타리니 궁전은 물론 대운하와 곤돌라 사공의 노랫소리, 심지어 20m 높이의 성당 천장에 드리워진 베네치아의 엷은 보랏빛 하늘까지 옮겨 왔다. 이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넋이 나간 듯 “세상에 저게 왜 여기에 와 있지?”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진짜 베네치아처럼 역한 냄새가 없어서 좋았다. 느닷없이 비가 와서 옷이 젖는 일도 없었다. 더러운 개가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는 일도 없다. 대신 사계절 가장 쾌적한 온도와 습도 속에서 인공의 호사스러움이 구석구석에 배어 있어서 베네치아보다 낫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런데 베네치아를 똑같이 베낀 이 호텔이 가장 라스베이거스다운 곳으로 꼽힌 이유는 뭘까? 그건 모방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가 어머어마한 돈과 교활한 장삿속이 만든 허위의 모방 도시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낡은 고가에서 사람이 걷기 좋은 길로 새롭게 태어난 서울역고가 ‘서울로 7017’. ‘7017’은 서울역고가가 개통했던 1970년의 ‘70’과 보행길로 다시 태어난 2017년의 17’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가짜 베네치아 호텔 같은 곳이 아직까지도 인기가 있을 리 없다고 장담해 본다. 나라면, 공짜이거나 엄청난 헐값이라면 모를까 제 돈 주고 가서 숙박하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쇼핑센터 가듯 잠깐 놀러갈 수는 있겠다.) 왜냐하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놀라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그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때가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러한 곳들이 죄다 한물간 퇴물처럼 느껴지는 때가 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유행이 지났다’는 말이다.

처음부터 ‘초’ 치기 싫어서 지나가는 말로 하지만 솔직히 걱정된다. 화산분화구나 오름 같은 가장 제주다운 절경을 모두 가져다 한자리에 모아둔다는 발상의 ‘제주 드림타워’의 미래가…. 야담이지만 말이다.

전 생애에 걸쳐 ‘매혹으로서의 대도시’에 대해 연구한 독보적인 사상가 발터 벤야민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이렇게 썼다.

“대중을 선도하는 것은 매번 최신의 것이지만 그것이 대중을 선도할 수 있는 것은 실제로는 가장 오래된 것, 이미 존재했던 것, 가장 친숙한 것의 매개를 통해 나타나는 경우에 한해서이다.”

마치 발터 벤야민이 오늘날의 건축계 흐름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그 옛날에 미리미리 쓴 글 같다. 한때는 대중의 이목을 끌었지만 어느새 수명을 다해, 혹은 더 이상 인기가 없어서 낡고 부서진 채로 철거 대상이 된 옛날 건물이 새로운 용도와 이름으로 멋지게 개조되어 다시 살아나는 현상이 전 세계적인 트렌드가 됐다. 목하 한창 유행 중인 ‘재생 건축’ 말이다.

그 포문을 연 건 한강의 버려진 정수장을 재생시켜 만든 생태공원 선유도. 때는 2003년이었는데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시적인 장엄함에 압도되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공공건축물이 생겼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에 단박에 건축가 조성룡을 찾아가 인터뷰를 청했던 일이 새삼 떠오른다.

그 이후 1925년 일제강점기 지어진 서울역이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로 태어났고 숙박요금이 8000원이던 시절에 멈추어 폐허가 된 보안여관이 대안미술공간으로 거듭났다. 문래동의 철공소 골목은 아예 그 골목 전체가 젊은 예술인들이 주도하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부활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가보지 못했지만 고구마 전분 공장의 흔적이 드라마틱하게 남아 있는 제주도 카페 앤트러사이트의 성공 신화는 질투가 날 정도다. 윤동주 문학관으로 탈바꿈한 인왕산 수도가압장 건물과 미술관이 된 찜질방 얘기는 어떤가? 한 번쯤 다 가보고 싶다.

그리고 아주 최근에 김어준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 나온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서울역고가 보행길 ‘서울로 7017’ 개장 소식을 들었다. “아 그러니까 버려진 고가 철도를 공원화하여 성공한 뉴욕의 하이라인(Friends of the High Line)을 모방한 거구나, 그렇죠?” 하고 김어준이 즐거운 듯 놀렸고 박원순이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아 모방 좀 하면 어때요? 그게 훌륭한 발상이고 모두를 위해 좋은 것이라면?”

맞다, 백번 맞는 말이다. 코코 샤넬도 모방했고 모방한 후에 이렇게 말했다. “복제는 사랑이다.” 사랑하면, 좋아 보이면 공공을 위해 모방할 수 있다. 그게 모방죄가 되지 않는 한도에서 말이다.

그리고 성공한 모방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 번째, 베낄 거면 진정 좋은 것을 베껴라. 두 번째, 유행 타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세 번째, 잘 베껴라. 네 번째, 원작을 뛰어넘겠다는 목표와 비전이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서울시 스스로 어떤 답을 내릴지는 나도 모르겠다. 여하튼 응원한다, 계속 잘하실 것을.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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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