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과 오리들이 ‘살처분’되고 있다. 이건 정말 대학살극이라 해야 맞겠지. 모두 인간의 육식 습성을 유지하려고 기르던 불쌍한 식용 가축들이렷다.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이 재앙, 이 죄악을 막을 길은 정녕 없는 걸까. 한없이 미안하고 죄스러운 일이다. 다른 나라들도 이러는지 잘 모르겠는데, 가슴이 찌릇찌릇 아프고 참 많이 속상하다.

닭과 오리를 기르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나는 아침이면 달걀보다 배나 큼지막하고 새하얀 오리알을 집어 들고서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곤 했었다. 목사관에 딸린 가축우리엔 닭, 오리, 토끼 말고도 염소까지 길렀지. 뿔 달린 염소는 자꾸 나를 쿡쿡 찌르거나 밀쳤다. ‘참피온’이라 불리던 염소 대장은 뿔 자랑을 시도 때도 없이 해댔다. 첨탑 가까이엔 여러 마리 집비둘기도 길렀어. 비둘기들은 멀리 날아갔다가도 오후면 집에 돌아오고 그랬다. 오리떼를 뒷개울에 풀어놓기도 했는데 그들도 비둘기처럼 저녁마다 귀가를 했다.

닭을 잡거나 오리를 잡는 일은 매우 특별한 날. 아버지의 선후배 목사님들이 오거나 집안 어른들이 찾아올 때. 어른들은 유쾌한 날이었지만 나는 슬픈 이별의 날이었다. 지금껏 고깃살을 그닥 찾아서 배부르게 즐기진 않는다.

나는 콩을 심기도 하고 두부를 좋아해 두부 요리를 즐긴다. 두부김치에 둘러앉으면 몇 순배를 마셨는지 막걸리가 동이 나고 없어져. 담양천변 국수거리에 가면 두부김치가 으뜸 안주. 평소 두부를 잘 먹지 않던 이들도 그 평상에 앉으면 두부김치를 찾게 된다. 두부찌개에단 강진 구강포나 장흥, 완도 뻘구덩에서 건진 바지락을 넣어야 제맛이 난다. 김치찌개를 끓일 때도 두부 한 모 썰어 넣으면 김치와 두부가 조화를 이루어 군침 넘어가게 만들지.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이 도는 얼마 동안이라도 집집마다 식단을 바꾸게 될 터. 연중 닭과 오리고기를 탐하고 사는 것도 죄가 되는 일이겠다. 완전히는 어렵더라도 육식 습관에서 조금이나마 놓여나는 계기를 삼았으면 싶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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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