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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음악사를 다룬 알렉스 로스의 저서 <나머지는 소음이다>에 소개된 뜻밖의 사실 한 가지. 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을 점령한 미군정(OMGUS)이 다름슈타트 국제 신음악 하계음악제가 출범할 때부터 예산의 20%가량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다름슈타트의 하계음악제는 이후 아방가르드 현대음악의 국제적 산실이 된다. 슈토크하우젠, 불레즈, 존 케이지와 같은 굴지의 현대음악가들이 이 음악제를 거쳐갔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윤이상도 예외가 아니다.

미군정이 현대음악을 지원한 것은 독일의 ‘탈나치화’를 위한 이른바 ‘심리전’의 일환이었다. 이해가 쉽고 집단적 정서에 호소하는 조성음악 대신에 개인화된 자유로운 아방가르드 음악의 미학적 가치를 우위에 둠으로써 전체주의의 발흥을 저지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것은 물론 소련과 현실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견제의 의미도 있었다. 로스에 따르면, “OMGUS의 뒤를 따라 중앙정보국(CIA)이 가끔씩 심히 복잡한 아방가르드 작품들이 포함된 축제의 자금을 지원했다.”

윤이상 (출처: 경향신문DB)

위와 같은 사실은 한국의 냉전 정치세력들이 작곡가 윤이상을 대해왔던 방식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1960년대 후반 박정희 정권과 중앙정보부는 이른바 ‘동백림 사건’의 간첩 혐의로 윤이상을 독일에서 국내로 납치해와 고문을 자행하고 2년 가까이 교도소에 감금했으며, 세계적 비난 여론이 들끓자 마지못해 석방한 뒤 추방했다. 미국 정부와 CIA라면 음렬기법과 무조성을 고수했던 윤이상의 아방가르드적 현대음악을 오히려 지원했을 것(최소한 공산주의자로 몰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1980년대 이후로 특히 자주 있었던 윤이상의 방북 활동은 한국 내 냉전세력들이 최근까지 그의 이념을 문제 삼도록 만든 빌미가 되었다. 남한 입국이 거부되어 있던 당시에 윤이상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조국 방문’이었음을 고려해야 하지만 의문이 남는다. 북한 정권은 왜 윤이상과 그의 음악을 받아들였을까? 윤이상의 난해한 현대음악은 ‘인민이 이해하기 쉬운 음악’을 전체주의적 기조로 삼는 북한의 관료화된 문예정책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동백림 사건’이 없었다면, 북한 정권이 윤이상의 급진적 현대음악을 지원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사실상 ‘남한 정부의 정치적 핍박을 받고 있는 세계적 명성의 작곡가’라는 윤이상 카드를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는 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북한 정권의 환영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윤이상의 음악 그 자체는 대중적 조성음악 언어로 바뀌지 않았다는 점, 즉 그의 음악은 단 한번도 ‘친북적’이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윤이상의 한국 방문이 시도됐다. 하지만 “지난날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는 것과 앞으로는 예술에만 전념하시겠다는 뜻을 밝혀” 달라는 당시 이홍구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의 서신을 전달받고 윤이상은 정중히 한국 방문을 거절했다. 이듬해에도 방한 기회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주사파 성향의 활동가들이 그를 찾아가 한국 방문을 강행할 경우 공항에서 분신자살이 행해질 것이라고 협박했다. ‘통일운동가’라는 이들의 위선적 행태에 실망한 나머지 윤이상은 이날 심장 발작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고 한다. 그해에 윤이상은 고향땅을 다시 밟지 못한 채 독일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사후 고향 통영에서는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최근 ‘윤이상 콩쿠르’의 지원금 중단 해프닝에서 볼 수 있었듯이 그는 여전히 누군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조차 종종 “예술에만 전념”이라는, 작곡가 자신이 모욕을 느꼈던 누군가의 바람을 넘어서지 못하는 듯하다. 윤이상의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찬 한국의 현대사이자 냉전의 세계사 그 자체다. 탄생 100주년, 윤이상을 기억하는 일이 작곡가로서 그의 세계적 명성이나 순수음악적 가치를 재확인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되는 이유다. ‘윤이상’이라는 이름은 한반도 평화의 미래를 향한 미학적·정치적 공감의 교두보다.

최유준 전남대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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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