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는 중국 문화대혁명 이후 찌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허삼관이라는 ‘피 파는(賣血) 사내’와 그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 보여주는데, 이 소설에서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는 허삼관이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요리를 하나씩 만들어주고, 아이들이 맛있게 받아먹는 장면이다. 피를 뽑아 팔아 생계를 꾸리는 가장(家長) 허삼관과 그 가족은 늘 가난에 시달리는 상황. 이 피 파는 사내가 허기진 채 잠자리에 누운 아이들을 위해 깜깜한 허공에 대고 말로 만들어주는 음식은 ‘홍소육(紅燒肉)’이다.

“고기가 익으면 꺼내서 식힌 다음 기름에 한 번 볶아서 간장을 넣고, 오향을 뿌리고, 황주를 살짝 넣고, 다시 물을 넣은 다음 약한 불로 천천히 곤다 이거야. 두 시간 정도 고아서 물이 거의 쫄았을 때쯤…. 자 홍소육이 다 됐습니다.”

허삼관은 아이들의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를 들었다(위화, <허삼관 매혈기>, 최용만 옮김, 푸른숲).

영국의 로알드 달은 <맛>이라는 단편소설에서 와인 마시는 법의 정석을 보여준다. 위화가 <허삼관 매혈기>로 격동의 중국 현대사와 변두리 삶의 인생담을 울리고 웃기며 질펀하게 들려준다면, 달은 <맛>으로 태연하게 연기하며 사는 사람들의 가면을 ‘내기’라는 극적인 장치를 만들어 통쾌하게 벗겨버린다. “냄새를 맡는 과정은 거의 일 분간 지속되었다. 이윽고 프랏은 눈을 뜨거나 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잔을 입으로 내리더니, 내용물의 거의 반을 입에 넣었다. (중략) 포도주를 혀 아래에서 굴리더니 씹었다. 포도주가 빵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로 씹고 있었다.”(로알드 달, <맛>, 정영목 옮김, 강)


위화와 달이 맛을 둘러싼 짠하고 유쾌한 이야기로 독자의 애간장을 녹여준다면, 한국의 한강과 독일의 귄터 그라스는 유년기 특정한 음식 체험을 통해 인간의 무의식에 새겨져 있는 트라우마를 드러내면서 치유(씻김)의 제의(祭儀)를 치러준다.

한국 작가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_연합뉴스

한강의 <채식주의자>의 영혜가 육식 거부의 삶을 단행하는 결정적인 계기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오토바이에 개를 매달고 동네를 돌고 돌면서 죽이는 과정에 죽어가는 개와 눈을 마주쳤던 기억과 그렇게 잔혹하게 죽여 만든 음식을 먹었던 원체험이 치명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아버지로 대변되는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거부와 거식이 변형적인 채식주의자로 그려졌다면, 그라스의 <양철북>은 주인공 오스카의 어머니가 해변에서 보았던 말머리 속에 들끓던 바닷장어와 그것을 잡아와 만든 바닷장어 요리가 뒤틀린 욕망의 매개물로 그로테스크하게 제시된다.

소설은 인간과 사회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소통하는 장르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음식은 소설에서 그저 인물들을 식탁에 모이게 만드는 단발적인 역할에 그쳤다. 21세기 전후, 소설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인물의 욕망을 이끄는 서사의 핵심으로 음식의 비중이 커진 것이다. 유월, 초여름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작가들이 소설 속에 차린 특별한 음식들을 다채롭게 음미하기를 권한다.


함정임 | 소설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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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