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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0일 밤에 딸아이와 함께 나는 30년 전 6월 민주항쟁을 기록한 동영상을 찾아서 봤다. 영상 속 서울 한복판에는 사람들이 장마철의 한강처럼 가득했고 문익환 목사의 외침은 그 물결에 부딪히며 흘러나갔다. “전태일 열사여!”로 시작하여 호명되는 앳된 청년의 이름들이 그 강 위에서 봄날의 꽃잎처럼 참 슬프게도 흩날렸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했던 전태일은 당시 고작 22살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공포 속에서도 민주화를 꿈꾸다 사망한 박종철·이한열도 20대 초반 꽃다운 청년이었다. 꽃잎 하나 떨어지면 이어서 수백개의 꽃잎이 떨어지듯 1970년 11월에 전태일이 사망하고 사흘째 되던 날, 서울대 법과대학 학생 100명은 ‘민권수호학생연맹 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고, 이어 이화여대, 연세대, 고려대 학생들 수백명이 추도식과 집회를 열었고 이는 계속해서 전국 각지의 학생과 청년들의 집회로 확산되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도, 1987년 6월의 민주화운동도 그 중심에는 청춘들의 영혼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1968년께 중부시장에서 일할 때 찍은 사진(왼쪽이 전태일).

수십명의 군경들에 맨몸으로 맞서 독재 타도를 외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다보면 그 광장에서 그들이 느꼈을 무서움, 슬픔 그리고 분노에 대해 가만히 상상해보게 된다. 나도 저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우리도 부당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들에 대해 저토록 저항해낼 수 있을까. 아니, 우리는 언제부터 침묵하는 것에 이토록 길들여지게 되었나.

지금 당장 한국 청년과 관련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산적해 있다. 헬조선, 흙수저 같은 자조 섞인 신조어, 알부자족(아르바이트해서 부족한 학자금을 모으는 청년들), 인구론(인문계의 90%가 논다), 니트족, 히키코모리 등 모두 불안정한 청년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 청년세대의 절망적인 상황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청년 실업률은 1999년 공식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후로 가장 높은데 여기에 취준생(취업준비자), 구직단념자 등을 포함하여 실질 실업률을 따져보면 청년 3명 중 1명이 실업자이다. 모두가 어렵다지만, 유독 청년층의 고용률만 감소하고 있다. 어렵게 취업되었다고 해도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청년층에서만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있고 저임금 노동자 비중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소득 변화를 살펴보면, 오직 20~30대 청년가구의 소득만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에 더해 청년들의 학자금 대출 규모는 지난 10년간 약 24배 증가했으며, 대출받는 학생의 수는 약 10배 증가했다. 상황이 이러니 좀 더 안정되고 높은 보수의 일자리로 가기 위해 학업이나 취업을 연기하는 것이 이제는 흔한 일이 되었다. 주거 상황도 나쁘다. 서울시의 경우 1인 가구 청년들의 5명 중 2명은 주거 빈곤 상태에 놓여 있는데 이들은 주로 고시원, 지하방, 옥탑방 등 열악한 주거 공간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 청년들은 국제적으로 그리고 국내 타 연령층에 비해서도 열악한 지위를 가지고 새로운 빈곤집단으로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질성을 가진 개인들은 비슷한 의제가 있으면 연대하기 마련인데 한국 청년들의 정치참여나 사회참여도는 다른 연령층에 비해 낮다. 청년문제에 청년들이 뛰어들기에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도 버겁다. 또한 독재정권처럼 아주 선명한 적폐가 있으면 모를까 지금의 헬조선은 누구의 잘못인지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알 수 없이 다만 자욱한 안개 속에서 ‘실패하는 것은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는 네온사인만 어렴풋이 깜빡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시대적 과제를 이렇게 방치해도 될까. 당장 이번 달의 최저임금 협상 결과는 청년들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 주거 정책, 소득보장 정책에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고 연대해야 한다. 일상 속에서 비판적 사고로 부당한 관행에 대해 끊임없이 반문을 제기해야 한다. 지난 시간 속의 청년들, 지금의 우리, 그리고 미래의 청년들이 흐르는 역사의 강에서 만나 공유할 것이 있다. 우리가 아파서 청춘이 아니다. 청년의 정신은 저항이다.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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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