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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추운 겨울날 한 공사업체 관계자가 용접허가증을 신청하러 온 일이 있다. 참고로 필자의 사무실에서는 용접허가증을 발급하기 전에 모든 현장을 직접 방문해서 안전여부를 확인한다.

그러나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면 그냥 따뜻한 사무실에 앉아서 몇 마디 주의사항을 주는 것만으로 현장방문 절차를 생략하고 싶은 유혹도 절로 생긴다. 그런 낌새라도 눈치 챈 관계자는 작업이 대단히 간단하니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된다며 망설이는 나를 더욱 흔들어 놓는다.

달콤한 유혹을 물리치고 현장에 나가보면 그들이 해 준 이야기와는 180도 전혀 다른 현장을 만나게 된다. 대수롭지 않은 용접작업이라는 말과는 달리 기름이 가득 차있는 기름 탱크의 밸브를 아무런 안전조치도 없이 용접하겠다는 것이다. 작업내용만 보면 그들의 말대로 아주 간단한 일일수도 있겠으나 그 주변 환경이 전혀 안전하지 않으니 문제다.

부분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현장의 안전을 전반적으로 챙겨보아야 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 구체적인 용접작업내용과 기간, 연기감지기가 설치된 곳에서의 용접작업장 환기여부, 건물 입주자 사전 고지여부, 용접장 주변의 인화성 또는 가연성 물질 방치상태, 작업 기간 동안 건물 내에 설치된 스프링클러 작동여부, 소화기 상태, 불티방지포 비치여부, 화재감시자 배치여부, 유사시 소방차 진입로 확보상태, 인근 소화전 유무 등을 꼼꼼히 챙겨본 후에 안전하다고 판단이 서면 비로소 용접허가증을 발급해 주어야 한다.

위에서 말한 용접작업은 단순히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용접작업장을 포함한 모든 현장은 저마다 주변 환경과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한건의 예외도 허용하지 않고 확인해 보아야 한다.

공사현장 점검, 소방검사, 현지 행정지도, 공연장 점검, 위험물 단속 등 현장을 확인할 때에는 조금이라도 허술한 점이 발견된다면 결코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관계자 및 관계부서와의 협의를 통해서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위험성 평가(Risk Assessment)를 통한 차선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_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출처 : 경향DB)


요즈음의 소방은 대한민국의 굳은 일을 도맡아서 처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많은 업무량을 제한된 시간 내에 처리하기 위해 문제점을 봐도 그냥 지나치게 된다. 또한, 가급적 민원 발생을 줄이기 위해 시민들의 편의를 지나치게 배려하다 보니 우리가 당연히 챙겨보아야 하는 <법적 안전지킴이>로써의 권한까지도 너무 쉽게 양보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 어떤 민원인들은 이런 점을 간파하고는 “내가 누군가 높은 사람을 잘 안다”며 은연중에 안전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몹쓸 짓을 하기도 한다. 이미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서 느꼈겠지만 그런 사람들의 대부분이 다 허풍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설령 그들이 정말로 높은 사람을 안다고 하더라도 담당자가 전문성을 가지고 규정에 근거해서 안전을 위해 업무를 처리하고자 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있을 수 없다. 또 그런 여건이 조성될 수 있도록 국민안전처를 비롯해서 각 지역 소방본부 및 소방서 차원에서도 강력한 행정적 지원도 해 줘야 한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재앙은 프로페셔널처럼 일해야 하는 사람들 모두가 아마추어처럼 대처한 데 그 원인이 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들을 접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은 규정과 매뉴얼을 잘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현장에서 충실하게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규정과 매뉴얼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문제지만, 진정한 전문가라면 규정과 매뉴얼이 마련된 근본 취지를 잊지 말고 현장에서 최대한 적용하려는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아무리 내가 의지를 가지고 완전한 100퍼센트를 지향하고자 하지만 사회 전반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과 “안전은 무조건 비싸다”라는 경제논리까지 더해지면 제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현실 앞에 무릎 꿇고 타협하는 일은 다반사일 것이다.

전문가로써의 자존심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현실여건을 핑계 삼아 자신의 전문성까지도 헐값에 팔아치우고 있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98% 만의 노력에 머무르며 그래도 나는 이런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완전함을 의미하는 100%에서 아주 작아 보이는 숫자 2%. 하지만, 그 작은 2%가 양보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인재가 발생했는지 우리는 그동안의 역사를 통해서 힘겹게 깨달아 가고 있다.

다른 분야와는 달리 소방안전 분야는 소방전문가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한 사람의 미성숙함과 나태함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록 자신이 받는 보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질지라도 진정한 소방전문가라면 사명감과 의지를 가지고 자신이 맡은 역할을 성실한 노력으로 채워나가야 한다.

소방전문가는 결코 완벽하지 않지만, 항상 완벽함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소방전문가만의 자존심이다.


이 건 |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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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