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첫 손님이 사무실에 오시어 책 한 권을 주셨다. 봉투에서 나오는 순간 그 책의 표지가 빵끗 인사를 했다. 거개의 표지들이 저를 좀 보아달라고 요란하게 비명을 지르기가 십상인데, 그저 최소한의 정보만을 담은 날씬한 책이었다. 김지연 사진 산문, <감자꽃>, 열화당. 오십에 사진을 시작해서 일흔에 책을 묶는다는 저자의 글과 작품은 여기에 함부로 옮기기가 저어할 만큼 애잔하고 솔깃했다. 표제작인 ‘감자꽃’의 이런 대목에서는 고개가 지면으로 구부러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진안에서 계남정미소를 공동체박물관으로 운영하면서 사귄 마을 친구를 한 명 대 보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장금숙 할머니를 들고 나온다. 당시 팔십대 중반인 그이는 이빨이 다 빠지고 허리가 기역 자로 구부러져 있어 휴우- 가락을 몇 번이나 쳐야 빤히 건너다보이는 자기 밭에서 우리 수돗가까지 올 수 있었다.”

표지 사진이 자꾸 눈에 밟혔다. 지하의 뿌리를 실하게 하느라 따 버리는 꽃이 하도 예뻐서 부케처럼 만들어 드렸다는 감자꽃. 꽃도 꽃이지만 꽃을 들고 있는 니은 자처럼 구부러진 할머니의 손이 오래된 생각 하나를 촉발시켰다. 서강대학교에서 도교철학을 가르치는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목이 멘다. 평생 농사일을 하신 당신의 손은 호미처럼 구부러져 있다.” 그 말은 금방 전염이 되어 목구멍 너머에서 짠한 마음이 불어나오도록 풍구질을 했었다. 오늘은 수제비 반죽을 해놓고 닳은 숟가락으로 감자껍질을 벗기던 어릴 적 내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도 하였다.

편안하다는 말은 참으로 편안하다. 이는 등받이 의자처럼 바닥에 앉아 있는 두 개의 니은 받침 덕분이 아닐까.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지만 나는 그동안 감자 앞에서 꽃을 몰랐다. 막걸리에 감자전만 좋아했지 이쁘고 고운 감자꽃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했다. 안간힘을 다해 사라지는 것의 흔적을 붙드는 <감자꽃> 앞에서 우리 어머니들의 팔 끝에 평생 달려 있다가 이제야 겨우 조금 편안해진 그 호미 같은 손이 그리는 풍경에 대하여 오래오래 생각했다. 감자, 가지과의 여러해살이풀. (사진ⓒ 김지연)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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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