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떴다. 슈퍼문, 블루문, 블러드문을 한꺼번에 관찰할 수 있는 개기월식이 일어났다. 어제하고는 많이 다른 달. 내일 뜨는 것과도 아주 다른 달. 하지만 이목구비가 훤한 아나운서가 큰소리로 소식을 전해주어도 고개를 들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먼 곳의 달은 충분히 멀리 있기에 달을 바라보는 사람과 사물 모두에게 일일이 눈을 맞추어 주었다. 이날 밤 나는 심학산 아래, 사무실 베란다에서 이 현상을 지켜보았다. 가로수로 심어진 상수리나무와 귀룽나무 그리고 계수나무가 하늘을 우러르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달-지구-태양이 나란히 정렬하는 이 황홀한 우주 현상은 2037년에 다시 일어난다고 한다. 그때도 벌레 먹은 듯한 달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지만 20년 후엔 벌레가 내 몸을 먹고, 눈에는 달이 아니라 흙으로 가득 찰지도 모를 일이다. 운 좋게 살아 있다면 침침한 육안으로 반드시 고개를 들겠다는 웅장한 약속을 했다. 아무튼 하나뿐일지라도 저 하늘에 저 달이 있기에!

하늘에는 별, 들판에는 꽃, 가슴에는 꿈. 달에 취해 방에 들어오다가 언젠가 광고에서 본 간지러운 문구를 떠올린 끝에 나의 생각은 곧장 천마산으로 내달렸다. 잃어버린 꿈이야 그렇다치고 모처럼 별의 이웃을 보았으니 꽃 생각이 사무쳤던 것이다. 입춘 근처라지만 꽁꽁 얼어붙은 머릿속에 꽃 이름이 뱅뱅 돌았다. 꽃에 입문하고 처음 찾았던 천마산. 꽃과 나무를 가까이하려고 노력하게 되면서부터 산이 그저 삼각형 모양의 흙덩어리만은 아니게 되었다. 춘천 갈 적마다 고개를 돌려 천마산의 구체적인 안부를 묻는다. 눈밭을 뚫고 명상하는 앉은부채는 한 소식 얻었을까. 계곡 바위틈의 매화말발도리는 안녕한가. 개별꽃은 옹기종기 나부끼고 있을까. 그리고 미처 이 자리에 소개하지 못한 큰괭이밥은 어느 응달을 밝히고 있을까. 뿌리에서 바로 뻗어나온 세 장의 삼각형 잎. 큼지막한 함지박 같은 꽃잎에는 올봄에도 실핏줄이 환히 도드라지겠지. 달에 드리운 지구 그림자를 보다가 지구에 떨어진 내 그림자를 밟으면서 생각해 본다. 한 해 한 번만 피는 꽃일지라도 저 풀들이 없었더라면! 큰괭이밥, 괭이밥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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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