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김정은·트럼프와 협력하며 남북관계, 비핵화 문제를 잘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너무 달라서 대화가 가능한 사이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이들이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게 된 건 이들 간의 이질성 때문이다. 서로 다르기에 상대를 인정해야 했고, 동질성을 바랄 수 없기에 상대를 존중해야 했다. 그런 자세를 견지했기에 적극적 관여정책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다름을 존중했던 건 도덕적 당위라서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국내 정치를 다룰 때 그러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이 집권세력의 지향점과 너무 다르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한국당은 합리적 보수를 내세우면서도 수구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태극기 부대와도 합치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대야 협력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아니라, 김정은·트럼프에게 적용했던 적극적 관여정책을 써야 할 이유를 말해준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상호 거리는 멀어지고 대립은 심화될 것이다. 김정은·트럼프와 함께할 일을 찾고 문제를 개선할 수 있었다면, 한국당과도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트럼프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 한 것은 그들을 피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핵을 기어코 가지려는 자와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핵을 해체하려는 자 사이에 피란처는 없었다. 그들과 직접 부닥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걸 위해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했다. 지금 문 대통령 앞에는 북핵 문제만큼 피할 수 없는 국내 과제가 있다. 불평등 해소, 사회경제 개혁이다. 문재인 정부에 맡겨진 이 개혁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어느 길로 가든 결국 한국당과 맞닥뜨리게 된다. 한국당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한국당을 우회해왔다.

문재인 정부는 북핵 위기 고조로 대화 전망이 흐렸을 때도, 북·미 정상회담 이후 협상이 막혔을 때도 돌파구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비공식 협상과 막전 막후 접촉을 가리지 않았다. 진전이 없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상황이 나아지길 무작정 기다리지 않았다. 정의용·서훈같이 신임하는 요직의 인사를 특사로 파견해서라도 교착 국면을 돌파하려 했다. 한국당이 정말 대화하기 까다로운 상대라면, 한국당에 대해서는 특히 그런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한국당과의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청와대에서 여야 대표 회동을 하고 여·야·정협의체도 구성했다. 그러나 단기 성과가 없자 더 이상 야당과의 협력에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판문점 공동선언을 성사시키기 위해 김정은에게 들인 정성과 노력도 국회 비준이라는 정치 과정으로 전환되면 이상하게 시들해진다. 정부와 여당은 당위론을 앞세워 비준에 협조하라고 한국당을 압박하기만 했다. 야당이라도 정부의 업적을 정당하게 평가해주는 여야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정치 환경 조성 노력은 하지 않았다. 한국당의 자세를 돌려놓기 위해 막후 협상하거나 핵심 인사를 보내 설득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대통령과 여당지도부는 한국당 지도부와 인내심 있게 비공식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 좀 더 중량감 있는 정무수석을 두고 일상적으로 대야관계를 책임지도록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존재감 없는 정무수석을 고수해 왔다.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외교관 출신 정무수석을 임명함으로써 대야관계에 어떤 신호를 보냈는지 알았다면 피했어야 할 일이다.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넘쳐도 남한에는 정치 갈등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다. 한반도 분단이 무너져 내려도 남쪽 내부 분단은 더 단단해지고 있다. 지금 한반도에서 대결하는 세력은 남북이 아니라, 남남이다. 남남 적대의 냉기로 인해 평화는 좀처럼 정치세력 사이에 스며들지 못한다. 평소 공기를 느끼지 못하듯 우리는 대결정치를 그리 유별난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언제나 목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의 협치, 연정론이 낯설었던 것이고, 이제는 철지난 유행어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 정치는 과연 비관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그렇지 않다. 낙관주의의 증거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요즘 부쩍 자신감이 붙었다. 그는 지난주 유럽을 돌 때 비핵화 진전에 맞춰 대북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미국보다 앞서 가는 것으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 신중했던 태도와 다르다. 상황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뚜렷하다. 70년 쌓인 적의가 소멸하고 있다. 남북협력을 할 수 있으면 남남협력도 가능하다. 왜 남남 대결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어야 하는가?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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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