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인 장면이다. 지구상 가장 오랜 적대관계를 유지해온 두 나라의 지도자가 세계 앞에 함께 섰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무실 책상의 핵단추를 누르기만 하면 상대를 절멸시킬 수 있다고 장담하던 군 최고 사령관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했던 이 땅을 한동안 전쟁위기의 불꽃이 튀는, 더 위험한 곳으로 바꿔 놓았던 적국의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이 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나 손잡고 대화하고 중요한 합의에 이를 수 있음을 증명했다. 가짜뉴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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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여신은 치명적인 무기가 없을 때가 아니라, 그걸 손에 쥐었을 때, 북·미 양측에서 노련한 지도자가 나타났을 때가 아니라, 경험이 부족하고 불안정하며 과격해 보이는 지도자가 등장했을 때를 기다려 고난도·고위험 과제를 안겼다. 이 운명의 장난으로 두 사람은 정상회담 쟁점을 충분히 협의하지도 못한 채 마주 앉아 주요 의제를 담판해야 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가 세부 사항을 다 이해했는지도 불확실했다. 트럼프는 아직 북한 문제를 원만하게 다룰 참모진용을 다 갖추지도 못했다.

이런 현실에서 두 사람이 정말 북한 비핵화와 체제 보장 문제를 해결할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싱가포르 회담 전 미국 주류, 혹은 워싱턴 기득권이 쏟아낸 비핵화 비관론과 트럼프 비판은 문제가 많다. 우리 한국인은 트럼프가 회담을 수락할 때 절묘하게 기회를 포착했다고 평가했지만, 미국 주류는 회담 자체가 보상해주는 거라며 취소를 다그쳤다. 우리는 트럼프의 북한 체제 보장 약속을 당연시했지만, 미국 주류는 ‘어떻게 독재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우리는 트럼프가 비핵화를 위한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비로소 그가 북핵 문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했지만, 미국 주류는 그가 뒷걸음치기 시작했다고 비난했다. 우리는 트럼프가 회담 성공을 빌 때 함께 빌었지만, 미국 주류는 회담 실패를 장담했다.

이들 미국 주류 상당수는 과거 북핵 문제를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룹, 즉 민주당,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진보적 싱크탱크들이다. 그런데 이처럼 이율배반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트럼프가 싫어서 트럼프의 한반도 정책도 싫어하게 된 결과로 보인다. 자신들도 풀지 못한 북핵 문제를 트럼프가 해결할 것 같은 불안감, 시기심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민주당은 그럴 자격이 없다. 민주당과 오바마는 날로 악화하는 북핵 상황을 방치하다 트럼프에게 떠넘긴 책임이 너무 크다. 오랜 세월, 불안과 전쟁위험을 짊어지고 살아온 우리 한국인에게 평화는 김정은과 트럼프의 호오(好惡)로 좌우될 수 없는, 절실한 삶의 문제이다. 우리가 싱가포르 회담이 다시 없는 기회임을 본능으로 알아채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북한에서 멀리 떨어진 미국 주류는 감지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피부로 느끼는 몇 가지 변화가 있다. 모두 북한의 새 지도자 등장과 관련이 있다. ‘완전한 비핵화.’ 지도자가 바뀌지 않았다면 공허한 구호로 끝날 수도 있는 약속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비핵화를 토대로 새로운 국가발전 전략을 세움으로써 불가역적 성격을 부여했다. 트럼프가 회담을 취소했을 때 굴욕을 감수하며 회담 개최를 요청한 것은 비핵 발전 전략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 우리 한국인이 ‘완전한 비핵화’ 한마디에 속은 것이 아니다. 트럼프도 속지 않았다. 미 대통령 가운데 그만큼 북핵 폐기 가능성을 믿고 집요하게 파고든 이가 없다.

남다른 감각으로 북한 변화를 눈치챈 그는 적시에 손을 뻗어 기회를 낚아챘다. 미국 주류는 모르지만 트럼프는 알고 있는 것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미국 주류가 비핵화를 믿지 못하는 이유’다. 미국 주류의 시선을 따라 북한만 바라보면 비핵화는 불가능하다. 비핵화를 평화체제 및 북·미관계 정상화와 엮은 공동성명이 확인해주듯이 비핵화는 북·미 협상의 종속변수이다. 김정은의 손을 떠난 것이다. 비핵화는 미국에 의해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공동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핵화에 실패하면 미국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그걸 알기에 협상에 전력투구했고, 회담 이후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미국 주류처럼 그걸 모르고 회담 이후에도 계속 북한만 쳐다보거나, CVID가 공동성명에 없다는 사실에 집착하면 비핵화는 여전히 속임수로 보인다. 역사는 항상 최선의 인물에 의해 최적의 경로를 가지 않는다. 역사는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놓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는 우연과 사건으로 점철되어 있다. 편견에 사로잡힌 이들은 트럼프라는 사건이 기회의 창을 여는 줄도 모른다.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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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