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호환(虎患)이 끊이지 않던 조선시대에도, 도성에 사는 일반인이 직접 호랑이를 보기란 흔한 일이 아니었다. 1741년 어느 날, 서울 정동의 민가에 호랑이 사체가 운반된다고 해서 구경꾼들이 운집하는 일이 있었다. 이용휴 집안에서 사냥꾼에게 후한 값을 치르고 가져오게 한 것이다. 그런데 마당에 눕혀놓은 호랑이를 이리저리 살펴본 이용휴는 적잖이 실망하고 만다. 맹수다운 이빨과 발톱을 지니고 있긴 했지만, 상상했던 것만큼 괴기스러운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그리던 호랑이가 그렇게나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모습이었던 것은, 책이나 그림을 통해 전해진 이미지 때문이었다. 이용휴는 말한다. “책에 실린 그 현명하고 뛰어나다는 인물들 중에도 이 호랑이 같은 경우가 많겠군.”

대단한 이미지로 신화화된 이들도 막상 한 꺼풀 벗겨보면 보통사람과 그리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심각한 허물이 드러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왜곡되거나 일부만 과장된 이미지로 인해 부정적으로 매도된 인물의 경우도 역으로 마찬가지다. 온갖 매체의 발달로 정보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실상과 이미지의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나아가 그 정보들이 누군가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조작되고 널리 유포된다면, 게다가 거기에 국가권력이 개입할 때,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파괴력을 지닌다.

모든 것을 직접 보고 나서야 판단할 수는 없다. 정치는 물론 사회관계와 경제생활 곳곳에 넘쳐나는 이미지들에 눈을 감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주어진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실과 허는 어디에 있는지 늘 따져볼 필요가 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를 놓아버린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그 이미지에 속수무책 속아 넘어가거나 심지어 그로 인한 폭력에 동참하게 될 수도 있다.

이미지의 진실성을 알아보는 데에 특별한 안목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단지 내 눈을 가리는 무언가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무시무시한 모습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세속의 호랑이 그림을 보여줄 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개들이 호랑이의 본모습을 진솔하게 묘사한 낡은 그림을 보고는 벌벌 떨며 도망가더라는 일화를 소개하며, 이용휴는 묻는다. “저 개들도 속일 수 없거늘, 사람이 가짜 이미지에 현혹되어 그저 휩쓸려 떠들어대기만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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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