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언론이 당신의 근황을 전해주지 않으니 당신의 요즘 형편이 더욱 궁금합니다. 당신의 트위터는 2014년 12월24일에 멈춰져 있군요. 헌법재판소(헌재)가 통합진보당(통진당)의 해산을 결정한 지 닷새 뒤입니다. 통진당 해산은 그보다 두 해 전 치러진 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의 텔레비전 토론에서 당신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세차게 몰아세웠을 때 이미 결정된 것이었을까요?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직후, 저는 통진당의 ‘종북주의’와 ‘위헌성’을 묻는 한 인터뷰어에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좀 길지만 인용하겠습니다. “통진당 구성원들 가운데 종북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이 있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그러나 통진당은 엄연한 합법정당이고, 더구나 원내정당입니다. 만약에 통진당이 대한민국 헌법이 정한 민주적 기본질서를 어기고 있는 정당이라는 판단이 선다면, 정부가 헌재에 통진당의 해산심판을 청구하면 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엔 헌재도 통진당을 위헌정당이라 판단할 것 같지 않습니다. 통진당이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합니까? 복수정당제와 선거제도를 부정합니까? 의회제도와 권력분립을 부정합니까?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정합니까? 그 당 구성원들 개개인의 생각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통진당이 그런 민주적 기본질서를 공개적으로 부정한 적은 없습니다. 따라서 정당해산심판이 청구되더라도, 헌재는 이것을 기각할 것입니다.”

그로부터 두 해도 지나지 않아, 제가 박근혜 정권의 몰상식을 과소평가하고 헌재의 양식을 과대평가했다는 것이 또렷해졌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법무부는 그 해 11월5일 헌재에 통진당 해산심판을 청구했고, 박근혜씨의 대통령 당선 2주기인 그 이듬해 12월19일 헌재는 인용 8, 기각 1이라는 압도적 다수의견으로 통진당 해산을 결정했습니다. 저는 이 판결이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뿌리째 뽑아버렸다고 생각합니다. 헌재는 법의 지배를 외면하고, 여론재판을, 그러니까 일종의 인민재판을 한 것입니다. 정권이 통진당을 눈엣가시처럼 여겼을 뿐만 아니라, 세간에도 통진당은 종북정당이라는 인식이 넓게 퍼져있었습니다. 헌재는 이 여론에 편승한 정치재판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정치재판이 시작된 것은 법무부가 긴급 안건으로 상정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건’을 국무회의가 심의·의결한 2013년 11월5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작은 2012년 4월11일 치러진 제19대 총선 직후 벌어진 통진당의 내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분당으로 마무리된 그 내분의 전말을 되돌아보면 입이 씁쓸합니다. 내분의 씨앗이 된 부정경선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이 스스로 부정경선을 저지른 옛 국민참여당(국참) 계열 당원이었다는 것도, 당신이 이끄는 소위 당권파에게만 부정경선 책임을 온전히 뒤집어씌운 국참당 계열이 거의 모든 언론의 십자포화 지원을 받아 부정경선 논란을 종북논란으로 바꿔치기해 당권파를 여론에서 고립시킨 것도, 결국 국참계와 옛 진보신당계가 탈당을 해 진보정의당(지금의 정의당)을 만들면서 자파 비례대표 의원들의 직을 유지하기 위해 소위 ‘셀프제명’을 한 것도 죄다 상식을 벗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국참계와 언론이 저지른 종북몰이에다가 중앙위원회에서의 폭력사태가 포개지면서, 여론은 통진당 내분 사태를 ‘사악한 이정희 대 정의로운 유시민’의 구도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통진당에 씌워진 부정경선의 올가미와 종북의 올가미 가운데 더 힘이 셌던 것은 후자였습니다. 당권파 역시 부정경선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은 당신도 인정할 테지만, 그 혐의를 오로지 당권파에게 씌운 것도 모자라 당신과 당신의 동지들을 종북으로 모는 전략으로 제 몸의 때를 씻어내려 시도한 국참계의 술수는 역겨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통진당에 짙게 드리워진 종북 이미지는 뒷날 헌법재판관들이 비겁하게도 법의 지배 대신 인민재판을 선택한 동력의 일부가 되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저는 지금 통진당 해산과정을 법치주의와 거리가 먼 인민재판으로 만든 것은 박근혜 정권만이 아니라 이 나라의 선정적 언론과, 한때 당신과 한 둥지에 있던 지금의 정의당 사람들이기도 했다고 말하고 있는 중입니다. 말하자면 당신과 당신의 동지들은 법리에 따라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이스태블리시먼트(Establishment)의 비토에 의해, 우리 사회에서 박멸해야 할 병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통진당 해산을 통해서 대한민국은 일단 그 멸균에 성공한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위생처리한 대가로 우리는 법의 지배라는, 민주공화국의 커다란 원칙을 훼손해 버렸습니다. 통진당 해산은 대한민국 헌재 역사의 가장 커다란 치욕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지하거나 방치한 우리는 민주공화국의 시민 자격을 그 순간 잃었습니다. 통진당 해산이 결정됐을 때 당신이 느꼈을 공적 절망감에 저는 깊이 공감합니다.

그러나 저는 한번도 통진당 지지자였던 적이 없습니다. 앞에서 인용한 인터뷰에서 저는 “통진당 구성원들 가운데 종북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이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의 북한 체제를 고금동서 최악의 전체주의 체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체제는 절대악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허물어지거나 바뀌어야 할 체제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절대악에 너그러운 사람들을 품고 있던 통진당이 위헌정당이 아니라고 제가 주장한 것은, 통진당 안의 그 세력이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일탈자들의 최소 수준, 곧 잔류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 세력이 통진당의 정책에 영향을 주기에는 너무 미미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북 체제에 너그러운 사람들이 통진당의 다수파라고 제가 판단했다면, 그 당이 북한과 협력해 대한민국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혁명정당이라고 판단했다면, 저는 당연히 통진당이 위헌정당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저는 결코 당신이 종북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을 다소 열정적인 민족주의자라고, 남북의 화해와 평화적 통일을 기원하는 평화통일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사람들에게 오해의 빌미를 준 것도 사실입니다. 6·25전쟁이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묻는 사상경찰의 수준 낮은 질문에 ‘남침’이라고 단호하게 대답하지 못한 당신이 안타깝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 그 전쟁이 1950년 6월25일 새벽에 시작된 것은 아니라는 수정주의가 하나의 학문적 견해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의적 사상경찰들을 포함해 대한민국 시민 대다수가 당신에게 듣고 싶어 했던 것은 복합적 성격을 지닌 그 ‘한국전쟁’의 ‘기원’이 아니라, 남과 북 사이의 전면적 전쟁을 시작한 것이 어느 쪽이냐였을 뿐입니다.

당신이 열정적 민족주의자로서 북의 동포들에게 깊은 연대감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연대감은 북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인권과 복지에 대한 관심으로 발현해야 합니다. 물론 북한 동포들의 인권 신장을 위한 접근에는 여러 길이 있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의 해결을 위한 당신의 견해가 주류 반북주의자들의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북의 동포들에 대한 당신의 연대감이 최악의 전체주의 왕조 체제에 대한 너그러움으로 발현한다면 당신은 남쪽의 악이 싫어서 북쪽의 더 큰 악을 보듬어 안는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그런 의미의 민족주의자는 아니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당신의 목소리가 문득 그립습니다.


고종석 | 작가·칼럼니스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