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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정치하는 사람을 정치인이라고 할까, 아니면 정치인이 하는 것이 정치일까? 정치하는 사람이 정치인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인이 모두 정치를 하는 건 아니다. 이름만 정치인일 뿐 실제 정치가 뭔지 모르거나 정치가 뒷전인 정치인이 많다. 우리 정치인의 문제 중 하나는 정치인이면서도 정작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치는 서로 생각과 이해가 다른 사람들이 기계적 등가성을 가지고 참여해 의사결정을 이뤄내는 기제다. 이 때문에 정치의 본질 중 하나는 타협이다. 자신이 아무리 옳다고 확신해도 정치 시스템에서는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상대가 옳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는 반정치적이다. 타협은 내가 틀렸다고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같이 가자는 공존의 선택이다. 정답이 아니라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정치문법의 핵심이다.

제도로 보면 입법부가 행정부보다는 태생적으로 민주적이다. 대통령은 1인이기 때문에, 또 대통령을 보좌하는 관료화된 행정부는 효율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권위주의와 친화성(affinity)을 갖는다. 반면 의회는 다수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부득불 조정하고 타협해야만 결정에 이른다. 민주적 절차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두 기관은 서로 다른 속성, 즉 대통령은 통치하려 하고 의회는 정치하려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여당을 강하게 옥죄는 경우 의회는 위축되고 정치는 실종된다. 대통령이 여당을 통해 의회를 지배하게 되면 정치가 온전하게 구현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지금까지의 여당은 언제나 대통령의 뜻에 따르는 박수 부대, 거수기였다. 이런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게 바로 김무성·유승민 두 대표다. 놀랍게도 이들은 통치의 부품이기를 거부하고 정치의 주체이고자 한다. 그들은 역대 여당 지도부와 달리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청와대에 맞서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이들은 청와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여야 합의안을 이끌어냈다. 여당 지도부가 대통령의 통치에 굴하지 않고 이처럼 맞서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해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또 다른 진전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제333회 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를 마친 뒤 로텐더홀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최근 김무성 대표는 돋보이는 정치력을 보여주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전야제와 기념식, 노무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에 여당 대표로서 참석했다. 홀대와 수모를 받았음에도 잘 버텨냈고, 이를 쟁점화하려는 욕망과 부추김을 이겨냈다. 그간 우리 정치에서 보기 힘들었던 통 큰 리더십, ‘정치하는’ 대표의 모습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공무원연금 개혁과 관련해 때론 청와대에 밀리는 듯했지만 결국 그는 소신껏 합의안을 통과시켰다. 당 중심의 국정운영이라는 약속을 지킨 셈이다. 청와대의 집요한 반대를 뚫고 ‘결단하는’ 그의 리더십은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견제·감시 역할을 복원시키고 있다.

김·유 두 대표의 독자 행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화가 많이 난 것으로 보인다. 국회가 시행령의 수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을 두고 청와대는 삼권분립 위반이란다. 오해라면 한심하고, 무지라면 찬란하다. 시행령이 그 근거가 되는 모법의 틀을 벗어나는 건 국회의 입법권 침해다. 삼권분립을 부정한 유신정권의 잔재다. 이런 점에서 이번 국회법 개정은 비정상의 정상화라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의 분노는 내년 총선을 겨냥한 권력투쟁의 성격도 있다. 이대로 가다간 내년 총선에서 친박의 도태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김·유 체제를 흔들어 자신의 개입력을 높이려는 시도다. 공안검사 출신의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의 선택도 사정 권력으로 총선 공천권을 놓지 않으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의회는 민주주의와 정치의 본령이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는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가 왕권을 제약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민주주의는 법치인데, 그 법의 제·개정은 의회의 고유 권한이다. 따라서 삼권분립 체계에서도 그 중심엔 의회가 있다. 오늘날의 대중민주주의, 복지민주주의를 일궈낸 견인차는 정당이다. 정당의 존재 없이 오늘날 민주주의는 설명할 수 없다. 경쟁적 정당체제를 통해 구성된 의회에서 타협하는 방식으로 민주적 의사결정을 이뤄내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의 요체다. 그런 점에서 김무성·유승민 두 대표의 정치 결단은 민주주의의 핵심축인 의회와 정당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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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