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은 합치는 것이고, 혁신은 바꾸는 것이다. 통합의 반대말은 분열이고, 혁신의 반대말은 수구다. 한국 정치사에서 야당이 주로 선택한 것은 통합이었다. 야권연대든 후보단일화든 그것은 모두 통합을 일컫는 말이다. 소선거구-단순다수제의 효과로 인해 선거가 주로 두 당의 게임이 되다 보니 분열한 쪽이 불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야권은 끊임없이 통합을 모색하는 것으로 위기나 수세를 돌파하곤 했다.

어느 세력이든 분열보다 통합을 선호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 통합이 혁신을 방기하는 알리바이로 작용하기도 한다.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렇다. 통합을 핑계로 낡은 정당이 됐다. 이 때문에 통합의 효과도 이젠 거의 없다. 지난 총선에서 야권은 통합해 선거를 치렀으나 졌다. 새누리당이 40%대의 안정적 지지율을 보이는 한, 1 대 1 구도만 되면 야권이 이긴다는 계산은 착각이다. 야권 후보가 1명뿐이더라도 비새누리당 지지표를 결집시킬 명분이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 명분을 세우는 것이 혁신이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이 혁신의 성패를 놓고 다투더니 이제는 혁신을 뒤로 물리고 통합에 주력하는 쪽으로 선회하는 것 같다. 당내 중진모임을 대표해 이석현 국회부의장이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혁신보다 통합이 중요하다.” 3선의 강기정 의원은 “혁신은 통합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문재인 대표도 정의당, 천정배 그룹과의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좋게 보면 혁신은 어느 정도 됐으니 통합으로 가자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혁신을 놓고 다투던 안철수 의원과 문재인 대표는 바보같이 혁신도 못하고, 남 좋은 일 시킨 꼴이다.

2012년의 총선과 대선, 그리고 숱한 재·보선에서 맥없이 패배한 원인도 혁신 부재, 즉 기성 질서를 고수하려는 수구적 태도 때문이었다. 천정배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신당 흐름이 생겨난 이유도 당이 혁신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에 가장 긴요하고 시급한 과제를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혁신이다. 어쩔 수 없이 혁신의 기치를 들긴 했지만 아직 혁신된 건 거의 없다.

이제 실행할 타이밍에 또다시 통합을 앞세운 기득세력의 공세에 떠밀리는 형국이다. 사실 새정치연합에서 벌어지는 내부 다툼의 본질은 혁신 대 수구이다. 친노 대 비노 간의 대결은 겉모습일 뿐이다. 본질보다 겉모습이 부각된 데에는 문 대표의 책임이 크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문재인 대표에게 “혁신안 처리를 연기하고 재신임 여론조사도 취소해달라”는 내용의 발언을 하고 있다._경향DB



혁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기성질서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혁신은 당의 부정적 요소를 털어내는 것이다. 혁신하면 인적 교체, 즉 물갈이가 연상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또 물갈이라고 해서 다선 의원들을 대거 퇴출시키는 것도 아니다. 정당은 노·장·청이 긴장 속에 균형을 이뤄야 한다. 특히 야당은 대규모의 양적 물갈이가 아니라 질적 물갈이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현역 의원이라고 해서 지레 겁먹고 혁신을 거부할 게 아니라 실력으로 당당하게 평가받겠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옳다.

혁신에는 인적 물갈이뿐만 아니라 프레임, 행태, 전략에서의 혁신도 있다. 정치·도덕적 프레임으로는 진보를 표방한 정당이 이기기 어렵다. 민심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인데, 삶과 관련되지 않는 이유로 야당을 찍어 달라고 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어떻게 해서든 사회경제적 프레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행태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안 된다’는 반대주의(anti-ism)로는 다수의 유권자들을 견인하기 어렵다. 민주정부 10년을 이미 경험한 바 있기 때문에 이제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형태로 반대해야 한다.

반대주의-반사이익으로 결코 이길 수 없다. 옳고 그름의 이분법에 기초한 ‘싸가지’ 없는 반대와 폄훼가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면서 적실성 있는 대안으로 경쟁해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능하지 못한 진보는 오히려 사회발전의 짐이다.

샤츠슈나이더의 말대로 “전략은 정치의 심장이다”. 새정치연합의 전략은 낡고 엉성하다. 지난 대선에서 충분히 확인됐듯이 세대 대결로는 이길 수 없다. 세대와 지역으로 보면 야권의 지지기반이 상대적으로 소수이기 때문이다. 야당이 집중할 균열은 계층 갈등이다. 정당이 아닌 운동선거에 대한 환상도 접어야 한다. 정당 중심으로 가고, 그 옆에 시민·사회세력이 서야 한다. 야권연대도 나눠먹기식이나 후보단일화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으로는 어렵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이길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혁신을 통한 통합뿐이다. 혁신 없는 통합은 총선에서 궤멸적 타격을 초래할 것이다.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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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