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를 버린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종량제 봉투에 넣어 내어놓거나, 재활용품으로 분류해 놓으면 다음날 사라지던 쓰레기다. 거대한 집게에 매달려 5t 트럭에 실린 채 시야에서 멀어지던 쓰레기는 내 머릿속에서도 사라졌다. 눈앞에서 사라진 쓰레기는 없어진 것인가?

<나는 쓰레기 없이 산다>의 저자 비 존슨은 “쓰레기가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을지는 몰라도, 우리의 머릿속에서도 사라진다면 곤란하다”고 말한다. “매립지에 이르러 환경을 파괴하고, 독성 화합물을 공기와 토양에 퍼뜨리고, 그 상품들을 만들기 위해 쓰였던 자원을 헛되게 만들며, 처리하는 데 매년 수십억달러가 들어간다”고 쓰레기의 사후를 설명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달 초 불거진 재활용 쓰레기 수거거부 사태는 ‘쓰레기의 존재감’을 유례없이 드러냈다. 마땅히 사라져야 할 것이 사라지지 않자 그제서야 ‘버린 이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재활용 쓰레기의 수거·선별·재활용 과정을 차례로 추적했다.

쓰레기를 쫓기 시작하자, 왜 눈앞에서 사라진 쓰레기에 관심을 갖기 힘든지 알 수 있었다. 정말 그것들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쓰레기 관련 업체들은 하나같이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 있었다.

쓰레기를 다루는 일은 거의 이주노동자들이 하고 있었다. 먼지와 냄새가 가득한 가운데 마스크도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미세먼지 수치 등을 논하는 것은 의미 없어 보였다.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실은 트럭이 왔다 갔다 하는 선별장에서 대표는 “사고가 잦으니 조심하라”고 말했다. 9일 뒤, 수도권의 한 선별장에서 노동자가 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페트병 재활용 공장은 4000여평 규모에 설비비만 200억원이 들었다고 했다. 공정은 간단했다. 이물질을 제거하고, 색상별로 분류하고, 부수고, 씻어낸다. 하지만 총천연색 페트병, 알루미늄 뚜껑, 잘 떼어지지 않는 라벨은 단순한 공정에 거대한 설비를 필요케 했다. 잘게 부서진 페트병 조각은 물로 세척된다. 그 폐수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인천, 경기 해안과 낙동강 하구가 세계에서 미세플라스틱 농도가 2, 3번째로 높은 곳이라는 연구 결과와 과연 무관할까.

‘쓰레기의 사후’를 보고 나자, 더 이상 예전처럼 쓰레기를 버릴 수 없게 됐다. 비닐은 운이 좋다면 고형연료가 되어 시멘트 공장에서 태워져 탄소를 내뿜을 것이다. 운이 나쁘다면 매립되거나 소각장으로 가 토양과 공기를 오염시킬 것이다. 1회용 커피컵은 대부분 매립장이나 소각장으로 갈 것이며, 어쩌면 스페인 해변에 떠오른 향고래의 배 속에서 나온 플라스틱 조각 중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쓰레기의 처리 과정은 재활용 마크처럼 명쾌하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비용과 노동이 들어가고, 또 그 과정에서 폐기물이 생산됐다.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물건이야기>의 저자 애니 레너드는 “쉽게 고장나고 재활용하기 어려우며 유독한 제품을 과도하게 포장해 판매하는 기업들이 어질러놓은 것들을 계속 치워주면서 그들의 나쁜 행동을 강화하지 말자”라고 말한다. 쓰레기가 될 물건을 생산한 기업이 책임지도록 하면 애초에 더 좋고 더 오래가고 독성이 덜한 물건을 만들게 될 것이란 것이다.

정부가 쓰레기 재활용 정책을 장기적 안목에서 검토하고 있다. 과도한 1회용품과 플라스틱 사용을 일상에서 몰아낼 수 있는 작은 틈새가 생겨난 것이다. 이 틈새가 커다란 문으로 확대되길 기대한다. 지구상에는 한 사람이 연간 420개의 비닐봉지를 사용하는 서울 같은 도시도 있지만, 연간 4개의 비닐봉지만 사용하는 핀란드 같은 나라도 있다. 그 차이가 개인의 선택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쓰레기는 그 사회의 생산과 소비, 생활방식, 환경과 지구와도 연관돼 있다. 그러니까 ‘쓰레기를 버린다’는 것은 정치적, 경제적, 윤리적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영경 토요판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