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6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대한민국 130번째 대법관이 얼마 전 퇴임했다. 법관 생활의 3분의 1을 사법행정기구에서 보냈다. 26년 판사 생활 중에 9년이 법원행정처 근무이고, 대법관이 되어서도 6년 중에 2년을 행정처에 있었다. 오롯한 재판은 20년 남짓 했다. 사법관료들 사이에서도 ‘사법행정의 달인’으로 불린다는 박병대 대법관이다.

하필이면 행정처를 폐지하라고 전·현직 판사가 국회에 모여 토론하는 시간에 퇴임식이 있었다. 언론 카메라 앞에서 그는 “사법권 독립과 법관 독립을 굳건히 하려는 논의가 자칫 자기중심적 이기주의로 비치지 않도록 스스로 살펴야 한다”고 했다. 한마디 허투루 하는 사람이 아니다.

박 대법관의 퇴임을 맞아 고위 법관들이 헌정문집을 출판했다. 대법원 산하 사법발전재단에서 세금을 써서 펴냈다.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청와대에 다녀온 김앤장 변호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참여했다. 판사들은 글을 써서 올리고 박 대법관에게서 고급 부채를 하나씩 받은 게 전부라고 한다. 자발적 참여인 셈이다.

1600여쪽짜리 헌정문집 <법과 정의 그리고 사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법행정에 대한 철학과 소신’이라는 제4부. 230쪽을 넘는 책 한 권 분량이다. 그가 행정처에서 이룬 업적을 소개하고 후배들의 평가를 실었다. 30명에 이르는 사법관료들의 헌사다.

“결단과 용기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추진력, 모든 이들을 열성팬으로 만들어 버리는 카리스마와 포용력.” “우리에게 국장님은 너무 큰 분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국장님의 번뜩이는 기지와 참신한 아이디어는 항상 답답하게 닫혀 있던 문을 열어주는 마법의 열쇠였다.” “대법관님께서 일신의 편안함과 개인적인 여유를 포기하셨기에 우리나라, 우리 사법부가 더 좋은 곳이 되었습니다. 대법관님! 사랑합니다!”

“우리는 국장님의 높은 경륜과 넓은 안목에 놀랐고, 추진력과 치밀함에 탄복했다. 우리는 국장님에 대한 존경심과 충성심을 ‘능대능소(能大+能小)’라는 네 글자로 표현했다.” “국장님을 모시는 동안 제가 느낀 심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석가여래와 손오공입니다. 이른바 철학에서 말하는 창발적 진화의 순간입니다.”

기자는 이 글들을 지난 주말 온라인에 공개하고 의견을 물었다. 서울지역 한 부장판사는 “10년 넘게 인사권 등 사법행정권을 행사하면서 법관과 법원을 사유화한 결과”라고 했다. 익명게시판의 어느 판사는 “사법제도와 재판절차 곳곳에 남겨진 흔적을 보면 그저 용비어천가로 썼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 독자들의 지적은 “문제는 박 전 대법관의 공과보다도 이런 글을 떳떳하게 공개까지 하는 판사들의 태도”라는 것이었다. Gang Lee라는 아이디를 쓰는 독자는 “마치 봉건국가에서 왕에게 맹목적 충성을 바치는 신하들의 찬가로 보인다”고 했다. 진즉에 검찰청 조직원인 윤석열 검사조차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법관료들이 평생을 ‘서울특별시 서초대로 219’에 있는 법원행정처에 모여 이런 글들을 주고받는다면야 얼마나 아름답고 훈훈한 일이겠나. 서로가 서로를 극한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직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나라의 노동환경은 급속히 좋아질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재판부로 복귀해서, 진짜 판사들이 해야 할 좋은 자리를 독점하고, 그래서 고위공직자 구속도 판단하고, 재벌가의 상속 문제도 다루다가, 마침내 국회와 언론을 발판으로 대법관이 되고 대법원장까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눈물이 나도록 슬픈 사실은 이 안쓰러운 헌사라도 끼적거릴 자격이, 대한민국 대다수 진짜 판사들에게는 주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 헌사들을 보고 어느 젊은 판사가 내게 말했다. 법원행정처에도, 민사판례연구회에도, 우리법연구회에도, 국제인권법연구회에도 속하지 않은 그이다. “죄송해요. 제가 부끄러워요.”

사회부 |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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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