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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대기업 근무할 때, 주중 저녁 8시쯤이면 부모님과 통화할 때가 있었다. 아버지가 말씀하곤 했다. “얼른 쉬어라. 피곤하겠다.” 퇴근해 저녁 먹고 운동 마치고 나면 보통 그 시간이었다. 잠들기 아쉬운 시간이었다. 책을 읽거나 자격증 또는 영어 공부를 했다. 12시쯤에 자야 보람차게 보낸 느낌이었다. 주말이 되면 카페나 도서관을 가거나, 다양한 분야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류하는 자리에 갔다.

주5일제가 2005년 즈음 공공기관부터 시작돼 대기업까지 빠른 속도로 전파됐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대기업 중 많은 경우도 주말근무와 야근이 당연했지만 어쨌거나 “토요일은 쉬는 날”이라는 생각이 금방 자리잡혔다. 많은 사람들은 ‘저녁이 있는 삶’과 ‘주말이 있는 삶’을 강조했고, 쉬지 못하는 박탈감은 공분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휴일’과 ‘휴식’의 의미는 점차 변화하고 있고 전통적인 휴식에 대한 감각은 해체되는 중이다. 베이비부머와 60년대생들에게까지 휴식은 취미 활동을 하거나 TV를 보거나, 가족·연인·친구들과 어딘가를 ‘놀러가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멍 때리면서” 쉰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늘어가고 있다. 구직자에게 휴일은 그저 달력에 달려 있는 날 중 하나다. 정년이 없어졌다는 것을 구직과정부터 간파하고 있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에게 휴일은 ‘뭔가를 배워야 하는’ 시간이 됐다.

단순히 ‘자기계발 이데올로기’라고만 봐야 할까? 짧게는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다른 차원에서는 배움의 양상이 ‘재생산’의 측면으로 들어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반복적으로 단순노동을 하던 시기에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체력의 비축이었다. 하지만 산업이 고도화되고 사회의 문맥이 복잡해지고 수리통계적인 기술이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요구되는 상황에서 재생산에는 ‘배움’이 추가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은 자기충전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런 차원에서 중등교육 수준의 ‘기술교육’을 강조하고 앞으로 ‘덜 배워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는’ 사회를 언급하는 정치인들에 대해서 불신의 눈초리를 갖게 된다. 솔직하지 못하다. ‘장인’이 될 정도로 기술을 단련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은 옳다. 그러나 ‘장인’은 이제 작업장을 넘어 분야 전체에서 통용되는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엔지니어’가 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 ‘4차산업혁명’을 앞세워 창의성을 강조하는 흐름에도 경계심이 든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물리학의 법칙을 세우게 한 ‘창의성’은 치밀한 이론적 고찰과 공부의 누적이 만들어낸 직관에 가깝다. 재미있는 것만 하라는 게 아니라, 재미있는 것을 단단하게 써먹을 수 있게 단련할 수 있게끔 해 줄 준비가 교육의 목표여야 한다.

끊임없이 개인들이 ‘함께 배우는’ 환경을 통해 집단지성을 구축할 수 있는 플랫폼과 문화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배움의 공동체’를 어떻게 일터와 삶터 모두에 구축할지도 질문이 된다. 공공도서관과 다양한 평생교육 콘텐츠를 제대로 자리잡게 하는 문제도 제기된다. 청년들이 고시와 공무원 시험으로 몰리는 ‘골방’의 비용을 풀어내는 것도 숙제가 될 것이다.

한 가지 일만 잘해 평생 정년까지 먹고살 수 있는 세계는 자본주의 황금기의 일시적 현상이었다. 선진국일수록 대규모로 안정적으로 정규직을 수십년간 고용하기는 어려워졌다. 공공부문의 신규 고용도 중요하지만, 뭇사람이 다양한 직업을 오가는 사이 연애, 결혼, 가족부양 등 안정적인 생활을 영유하며 배울 수 있는 게 소득을 보전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 됐다. 탈진해 쉬고 싶은 사람들에게 재충전을 위한 기본소득을 주는 것도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급격히 변해버린 일과 배움의 문제에 대한 비전을 세우는 일. 이제 정치의 몫이다.

양승훈 | 문화연구자·경남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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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