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까불던 친구가 반장이 되더니 의젓해진다든가, 수줍음 많던 사람이 리더가 되어 남들 앞에서 그럴듯하게 말하게 되는 것을 보며, 우리는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말하곤 한다. 책임감이 마음가짐의 변화로 이어져 자리에 걸맞은 실력과 행동거지를 갖추려 노력하다 보면 숨어있던 능력이 계발되고 발휘될 수 있다. 여기에, 자리가 부여하는 좀 더 넓은 시야와 정보, 다양한 가용 자원 등을 잘 활용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반면에 “자리가 사람을 망쳤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렇지 않던 사람이 어느 순간 도무지 소통을 모르고 독선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공공을 위한 순수한 열정으로 출발했다가 점차 사적인 권력의 화신이 되는 과정에, ‘자리’가 존재한다. 떠받드는 사람들에 둘러싸이게 되면 그들의 대접이 ‘나의 훌륭함’ 때문인지 ‘나의 자리’ 때문인지를 점점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대접받는 것만큼 쉽게 익숙해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무명 시절의 항우와 유방이 각각 진시황의 성대한 행차를 구경했다. 기운 세기로 유명한 22세의 거구 항우와 가진 것 없이 유쾌하기만 한 시정잡배 유방이 보인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와! 나도 저 자리쯤은 한번 해봐야 할 텐데.” 그러나 결말은 매우 달랐다. 장수로서 최고의 능력과 과단성을 지닌 항우는 승승장구하여 패왕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결국 그 자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반면 그다지 장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던 유방은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오히려 진화한다. 사람 많이 꼬이고 사람 좋아하는 천성이,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자 적절한 용인술로 빛을 발한 것이다.

권력에 취하면 뇌와 호르몬이 변화되어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실험 보고들이 제출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동일한 조건에 동일한 반응을 보이는 존재가 아니다. 자리는 사람을 만들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다. 관건은 성찰에 있다. 엄청난 자리를 만들고 지켜낸 유방보다 우리는 공자를 더 높게 기억한다. 내세울 만한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끝까지 자신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않았기에 공자는 만세의 사표로 살아 있다. 소왕(素王)이라는 자리가 그에게 어울리는 이유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일반 칼럼 > 송혁기의 책상물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리가 사람을 만들까  (0) 2018.04.11
불행을 견디는 힘  (0) 2018.03.28
중용의 이름으로  (0) 2018.03.14
봄날의 소망  (0) 2018.02.28
지켜야 할 약속  (0) 2018.02.14
[송혁기의 책상물림]당당함의 무게  (0) 2018.01.3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