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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건 기다림이다. 북극곰은 늙은 바다코끼리가 뭍에 올라와 숨을 거둘 때까지 사흘 밤낮을 기다린다. 파도가 오고 파도가 가고, 밤이 오고 밤이 가고, 그는 한 생이 끊어져가는 지루한 의식을 지켜보며 시간을 잊는다.

그는 기대가 어긋나도 흥분하지 않는다. 늙은 바다코끼리가 다시 기운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먼 바다로 나아갈 때, 그는 실패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다시 살아난 바다코끼리도, 사흘 밤낮을 기다린 그도, 배를 곯고 있는 새끼들도, 모든 걸 지켜본 일각고래도 이곳에서는 하나의 ‘자세’일 뿐이다.

기다림의 자세에서 극을 본다.

근육과 눈빛과 하얀 입김,

백야의 시간은

자세들로 채워진다. - 허연(1966~ )

북극곰은 어떻게 인내하는 법, 동물적인 욕망과 야생적인 본능을 다스리는 지혜, 겸손하게 기다리는 태도를 배웠을까. 그것은 혹독하고 냉혹한 북극의 자연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대대로 피와 살에 새겨진 교과서를 통해 배운 자세일 것이다. 그 자세는 수만 년 파도에 씻겨 반들반들해진 바위를 닮았다. 자연이 깎고 다듬은 작품 같다. 심장이 달린 만년설, 팔다리가 달린 얼음 같다.

오늘의 굶주림 뒤에는 더 큰 위협이 기다리고 있다. 자원의 고갈을 부추긴 인간의 자연 개발이 북극의 빙산을 녹이고 북극곰의 삶의 터전을 없애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포클레인이 파헤치는 대로 순순히 제 순결한 살을 내어주는 땅처럼 북극곰은 그 굶주림과 죽음을 침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저 비극에서 고분고분하게 파괴되어 주지만 언젠가는 감당할 수 없는 재앙으로 돌아올 자연의 자세가 보인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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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