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자는 다리가 넷

나는 다리가 둘

 

나는 걷고

탁자는 걷지 않고

 

새는 다리가 둘이다

새는 날아다니고

 

너는 다리가 둘

탁자는 다리가 넷

 

이 모든 것에 의미가 있을 거야

아니면 없을 거야

다리가 넷 달린 개 한 마리가

총총총 앞을 지나고

 

이 모든 일을 알고도 탁자는 가만히 있다

 - 황인찬(1988~ )

한 번도 물어보지 않은 물음이 있다. 왜 나는 다리가 둘이고 탁자는 넷인가. 한 번도 궁금한 적이 없는 궁금증이 있다. 왜 나는 걷고 탁자는 걷지 않을까. 나는 왜 이것이 궁금하지 않았을까. 그 까닭은, 정말 궁금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 궁금증을 잃었기 때문이 아닐까. 먹고사는 일을 궁리하거나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을 처리하기에도 바빠서 궁금해질 틈이 없다.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궁금증은 다 쓸모없는 일이 된다.

시는, “다리가 넷 달린 개 한 마리”가 앞을 지날 때, 뭔가 중요한 물음도 네 개의 다리를 달고 지나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전혀 중요할 것 같지 않은 물음들, 너무나 하찮아서 물어볼 가치가 없을 것 같은 물음들에게 어린이처럼 다가간다. 궁금해지기 위해, 물음 같지 않은 물음에서 근본적인 물음을 발견하기 위해, 기꺼이 어린이가 된다. 모든 사물, 모든 현상이 무한한 신비를 품고 있었던 어린 시절은 어디로 갔나. 그 신비를 단번에 알아보고 끊임없이 질문해대던 내 안의 어린이는 어디로 갔나.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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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