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 | 서울대 교수·정신분석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다.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일이 힘들다. 집에만 주로 머물던 아이가 학교를 가면 부모가 할 일이 더 많아진다. 아이의 새 세상에는 다른 아이들, 선생님들, 친구의 엄마 아빠들은 물론이고 거리의 낯선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로 넘치는 학교 가는 길을 아이는 부지런히 갔다가 집으로 다시 온다. 오가는 길에서 아이는 집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조금씩 겪어가며 생각이 크고 감정이 풍부해진다. 아이가 학교를 간다는 것은 부모가 전적으로 맡아 키우는 아이에서 세상이 키우는 아이가 되었다는 뜻이다. 사춘기를 맞으면 아이는 부모가 키우는 아이에서 자기가 자기를 키우는 새로운 차원의 아이가 된다. 당연히 거기에 맞추어 부모도 달라져야 한다.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늘 아이를 곁에 두고 살아온 부모는 “내 아이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안다”고 확신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겪는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거나 알아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부모에게 아이는 작든 크든 늘 “잘 키워야 하는” 양육의 대상일 뿐이다. “스스로 잘 크기를 원하는” 아이와 “여전히 잘 키우기를 원하는” 부모는 충돌하거나 평행선을 달린다.

부모가 아이를 잘 키우려고 애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식이니까…, 과연 그것뿐일까? 부모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이켜본다. 후회가 밀려온다. 지금 같으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을 하고 가슴을 친다. 불현듯 깨닫는다. 또 한 번의 기회가 있다. 나는 못했지만 내 아이가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내가 그리 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부모는 아이에게 최상의 인생을 살기 위한 전략, 작전, 행동을 지시한다. 그러나 오늘이 더 즐겁고 행복해야 하는 아이는 아직 살아보지 않은 자신의 미래를 부모의 경험과 기대에만 맡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서울 목동 학원가에서 학원 수강을 마친 학생들이 귀가하고 있다. l 출처:경향DB

부모가 보기에 아이의 저항은 답답하다. 저 잘되라고 하는 일인데…. 자신의 대리만족 집념이 강박이고 무리라는 점을 깨닫고 고치기보다는 아이가 철없다고 생각하고 철들게 하는 방법으로 엄격한 관리와 훈육을 택해 밀고 나간다. 아이와 부모, 부모와 아이는 부딪친다. 아니면 숨겨진 갈등은 안에서 터져나올 시기를 꿈꾸며 자라난다. 학교폭력, 집단따돌림, 일탈, 가출, 비행, 범죄는 스스로 크려는 아이와 아직도 키우려는 부모가 부딪치며 떨어뜨리는 파편들이다.

삶의 경쟁에서 뒤처진 과거의 상처가 가끔 재발해서 힘든 부모가 있다면 자신의 아이와 다른 부모들의 아이들 간의 ‘세기의 대결’을 꿈꿀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아이는 ‘최종 병기’로 단련되어야 한다. 아이가 이기면 내가 이기는 것이다. 아이가 지면 내가 지는 것과 같다. 부모는 ‘내가 키운 아이가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입술을 깨물며 불안한 마음을 달랜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공교육이 아니다. 학원이 주도하는 사교육도 아니다. 실상은 유아원,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적어도 대학을 갈 때까지 아이를 가진 가정마다 부모가 주도해서 만들어내는, 낮밤으로 진행되는 가정식 교육이며 전쟁이다. 내신관리를 위한 공부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소규모 전투의 연속이라면 수능시험은 전면전이다. 외국 명문대학 진학에 성공하면 해외의 전쟁에서 이긴 것이다. 부모는 지휘관이고 아이는 전투병이다.

오늘도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현재의 행복이 아닌 미래의 승리를 위해 자신도 모르게 근저당 설정된 삶을 여린 어깨로 힘들게 받들고 자정이 가까워서야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부모는 전장에 내보낸 병사의 귀환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아이가 집에 올 때까지 밤잠을 설친다. 이 모든 것을 움직이는 힘의 깊은 곳에는 부모의 좌절, 보상을 위한 노력, 대리만족의 기대, 실패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아이들은 오늘도 찾아오지 않는 행복을 기다리며 학교에서 학원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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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