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 | 서울대 교수·정신분석


말이라는 것이 묘하다. 멋있게 할 수도, 천하게 할 수도 있다. 말에서 사람의 품격이 배어 나오니 말을 제대로 잘하는 것은 중요하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 중 하나가 정치인일 것이다. 정치인은 말로 자신을 유권자들에게 알린다. 


단순무식하게 보면 가장 유능한 정치인은 어떤 사람일까? 덕이 있는 사람일까, 정직한 사람일까, 화장실에 앉아서도 나라의 장래만을 걱정하는 사람일까? 유감스럽게도 말로 사람들을 아주 잘 속이는 사람일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말에는 욕(辱·욕설)이 포함된다. 욕을 표현하는 단어가 없는 언어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욕하는 행위는 인간 본성의 일부일 것이다. 욕에는 카타르시스 효과가 있다. 욕 몇 마디로 마음에 맺힌 응어리가 풀리는 것을 누구나 체험한다. 욕을 하는 행위가 집단의 정체성 유지와 단결 강화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축구 영국과의 경기에서 우리 감독이 선수들에게 쉬는 시간에 했다는 “…X도 아니지”라는 말은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되었으니 욕이 아닐지 모른다.


그런데 정치인이 하는 욕은 차원이 다르다. 언론 보도를 통한 파급효과가 나라 전체에, 때로는 다른 나라들에도 미치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을 논란의 중심에 세움으로써 이름을 널리 알리고 영향력 있는 인물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중요할 수는 있겠으나, 정치인의 욕설은 나라와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엉겁결에 당하고 상처를 입은 상대방은 대처 방법이 마땅치 않으니 불공정한 게임의 희생자가 되어 버린다. 더욱이 욕을 뱉은 사람이 욕먹은 사람에게 애매한 방식으로 유감을 표시하면서 말을 자꾸 바꿔 나가면 상대방은 정말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년' 표현 사과하라 (출처 :경향DB)


욕하고 욕먹는 상황은 이미 기술의 진보에 따라 가상공간으로 확대되었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 대한민국 정치권이 구사할 언어 수준은 그리 품격이 높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일반적으로 욕을 잘하는 사람은 성격적으로 교묘하게 무엇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어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그런 사람에게는 욕먹는 사람이 정말 그 욕을 먹을 만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게 만드는 솜씨도 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위를 점하기 위한 욕 수준의 논평, 비방, 공격은 점점 교묘해지고 체계화될 것이다.


정치인일수록 “정치적으로 정확한” 표현을 세련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북미와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벌거벗은 욕’을 대놓고 하면 법과 규정에 따라 처벌 대상이 된다. 우리는 그런 면에서 지나치게 관대하다. 특히 여성에 대한 언어적 비하가 있어도 우리 사회에서 별 파장을 일으키지 못하는 현상은 아직 우리가, 심지어 여성들조차도 남성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방증이다. 여성 국회의원들조차 정치적 입장에 이끌려 남녀평등이라는 사회의 근본가치를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은 차라리 희극적이다. 2012 런던올림픽 출전 때문에 본인과 가족에 대한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는 어떤 나라 여성 선수의 이미지가 대한민국 대선이 가는 길과 겹쳐 나타나는 것은 환상일까, 아니면 현실일까?


말은 말로 끝나지 않는다. 말은 평소 지닌 생각의 표현이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선과 같은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특정 후보에 대해 뱉어진 상대편의 심한 말은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부정적이고 차별적인 메시지를 알게 모르게 대중의 머리에 각인시키려는 전략이다. 차기 대통령이 되시려는 훌륭한 분들이나 그 주변인물들이 꿈꾸는 대한민국이 자신들과 다른 것만으로 차별받지 않는 국가라면, 욕설로 정치를 하는 행위는 철저하게 금지하고 위반한 사람은 법으로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논하기에 욕설의 품격은 너무나 비천하다. 칼이나 총이 아닌 혀끝으로도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일 수 있다. 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이 다 듣고 보고 있으니 참으로 당황스러운 일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