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헌법 제29조 제1항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은 국민에게 국민 기본권의 하나로서 국가배상청구권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제2항에서는 군인, 군무원, 경찰공무원이나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전투, 훈련 등 직무집행과 관련해 받은 손해에 대해서는 법률이 정하는 일정한 보상 외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군경 등에 대해 일반 국민들과 달리 국가배상청구권을 헌법에서 직접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군경 등은 공무수행 중 사망이나 부상의 위험에 적잖이 노출되어 있지만, 이런 그들의 희생에 대해 당사자나 유가족이 배상 대신 받게 되는 보상 금액의 액수는 부당하리만치 적다. 헌법 제29조 제2항이 군경에 대한 이런 부당한 차별적 처우의 헌법적 근거가 되고 있다.

이 조항이 헌법에 규정되게 된 데에는 독특한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1960년대 중반의 월남 파병이 발단이 되었다. 1965년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전격적인 월남 파병을 결정한다. 이에 따라 우리의 젊은이들이 월남전에 대거 투입되었고, 전투 중 전사 혹은 부상을 입는 경우가 속출한다. 이들에게 국가가 법률에서 정한 보상금을 지급하는 이외에, 이들의 전사나 부상이 상관의 부당한 명령을 따르는 등 다른 군인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것인 경우에 이들이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해오면 국가가 적지 않은 배상금도 물어주어야 할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967년 3월3일에 법률 제1899호로 공포된 국가배상법의 제2조가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군인, 군무원이 직무수행 중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보상으로 족하고 별도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이 조항은 국가가 보상 이외에 배상까지 해줄 경우에 국가재정이 고갈될 수 있다는 점을 취지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법률단계에서 상위법인 헌법이 보장하는 국가배상청구권 행사를 군인·군무원이라는 이유로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지적이 많았고, 대법원에서 이 국가배상법 제2조에 대한 위헌 여부가 다투어지게 되었다.

1971년 대법원은 위헌결정을 내린다. 대법원이 1962년 개정헌법에 의해 위헌법률심사권을 갖게 된 지 9년 만에 내려진 최초의 위헌결정이었다. 위헌의 주된 근거는 평등권 침해였다. 국가배상법 제2조가 국가배상청구권의 행사와 관련해 일반 국민과 비교했을 때 군인·군무원을 차별하고 있는데, 그 차별의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국가가 차별의 근거로 내세운 ‘국고 고갈 방지’는 국가배상청구권이라는 헌법상의 기본권 제한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판결의 핵심 취지였다.

이 위헌결정으로 당시 대법원은 정권의 진노를 사고 수모를 겪게 된다. 위헌입장을 피력한 대법관들은 연임에서 탈락해 법복을 벗고 갖가지 고초를 겪는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72년에 공포된 유신헌법에서 위헌법률심사권은 대법원에서 헌법위원회로 넘어갔으며, 대법원이 위헌무효화시킨 국가배상법 제2조는 군인, 군무원 이외에 경찰공무원 등을 추가하는 개악을 거치면서 법률규정이 아니라 헌법규정으로 격상된다. 헌법조항에 대해서는 위헌심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헌법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같은 헌법조항인 헌법 제11조의 평등조항과 충돌을 일으키는 문제를 여전히 가진다. 그 후 법률단계에서도 국가배상법 제2조가 부활하고 개악되면서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대다수의 헌법학자들도 이 조항을 대표적인 악법조항으로 꼽는다.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외국의 헌법 어디에도 군인 등에 대한 이중배상 금지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 조항을 볼 때마다 ‘인간’보다는 ‘국가재정’이라는 돈을 중심에 두는 조항이라는 생각이 든다. 돈 때문에 인간의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 돈 때문에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군인과 경찰공무원 등을 충분히 포상하기는커녕 오히려 차별하고 있다.

요즘 개헌 논의가 뜨겁지만 정치권은 온통 대통령제니 이원집정부제니 하는 권력구조 논의에만 몰두하고 있다. 권력구조에 관한 헌법조항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으로서의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권력구조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어야 한다. 기본권 조항이 ‘목적’이라면 권력구조 조항은 ‘수단’인 셈이다. 따라서 이번에 개헌을 한다면, 기본권 조항 중심의 개헌이 되어야 하며 특히 인간을 다른 무엇보다 중심에 두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기본권 조항들의 맨 앞에 위치한 헌법 제10조에 규정되어 있듯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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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