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이 곧 폐막된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한반도의 긴장고조로 인해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자체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했는데, 올림픽은 물론이고 평화의 초석까지 마련한 매우 다행스러운 결말로 가고 있다. 엄격하게 보자면 평창 올림픽은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특정세력의 이익을 위한 이용이 아니라 올림픽정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평화증진이라는 점에서 비난받을 일은 아니고, 오히려 환영받을 일이다. 초기에 평양올림픽이라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평양’을 ‘평창’으로 이끌어 ‘평화’로 가는 기회로 삼았다는 평가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미국 펜스 부통령의 대국답지 못한 행보로 잔치를 준비한 우리의 체면을 구긴 측면도 있으나, 미국의 처신이 비판받은 반면, 한국 정부의 평화를 위한 노력을 돋보이게 한 측면도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문재인 대통령의 표현대로 기적처럼 만들어낸 대화의 기회를 평창 이후까지 어떻게든 살려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올림픽은 기적적으로 주어진 기회인 것은 분명하지만, 올림픽의 기원이 그랬던 것처럼 대회기간 동안의 잠시 휴전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남북한 관계개선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 외에 북핵 문제, 북·미 대치, 미·중 대결 등 어느 하나 해소된 것은 없다. 지난 칼럼에서 잠깐 언급했던 <천일야화>와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비유될 수 있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의 한반도 상황은, 그리고 한국 정부는 마치 매일 밤마다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운명과 비슷하다.

왕비와 후궁에게 배신을 당한 샤푸리 야르왕은 매일 밤 자신과 동침한 처녀들을 죽이는 괴벽이 생겼고, 이것이 3년간 이어지면서 나라 안의 수많은 여자들이 희생을 당하기에 이른다. 그런 와중에 지혜로운 여인 셰에라자드가 들어가 왕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던 왕은 목숨을 빼앗지 않았고, 이야기는 천일 동안 계속된다. 한국은 전쟁위협으로 인한 존망의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평화의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셈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이솝우화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안데르센의 동화로 여러 다양한 사회학적 함의들로 인해 수많은 해석과 적용들이 있어왔다. 백성들의 삶은 뒷전인 채 허위적 권위에 집착한 지도자와 정직하지 못한 기득권 공모자들, 그런 가운데서도 진실을 말한 한 아이의 용기 등이다. 이 동화는 개인우상화의 전체주의 북한체제가 먼저 떠오르게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그에 못지않다. 역대 어떤 미국의 대통령보다 직에 대한 적합도가 떨어지는 대통령이지만 세계최강 미국의 리더라는 것 때문에 벌거벗고 있음을 지적하지 못한다. 최근 트럼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인터뷰를 담은 화제의 책 <화염과 분노: 트럼프 백악관의 내부>의 저자인 마이클 울프가 자신의 책의 흥미로운 효과 중 하나는 ‘벌거벗은 임금님’ 효과라고 했다.

트럼프가 한·미관계에 주는 벌거벗은 임금님 효과는 더 큰 함의를 가지는데, 바로 한·미동맹의 신화와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 의존에 대한 깨우침이다. 한·미동맹은 여전히 우리 생존의 중요한 자산이지만, 한반도 전쟁위기를 미국이 고조시키면서 동시에 이를 빌미 삼아 주둔분담금, 무역보복, 무기판매 등에서 자국 이익 챙기기에 나섬으로써 동맹의 상호성을 깨고 있다. 역설적인 것은 트럼프의 미국이 동맹비용 상승의 함정에 대한 현실감을 극대화시킴으로써 기존의 신화적 지위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강경파들은 북한을 악마화하면서 한국이 악마와 대화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든지 상황을 강경대치국면으로 가져가려 한다. 한국의 보수강경파들은 정부의 대화노력에 미국의 심기를 건드려 동맹을 위기로 몰아간다는 말을 반복한다. 마치 동화 속의 대신들 같다.

우리가 벌어놓은 시간은 짧게는 장애인올림픽이 폐막하는 3월 말까지, 길게는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창 올림픽과 함께 민족의 사변(경사)이라고 표현한 북한의 9월9일 건국일까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상황에 따라 협상의 유리한 국면을 확보하기 위한 저강도 도발의 가능성은 남아있지만, 이번에 보여준 일련의 행보들로 미뤄 대화모드를 이어갈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이 기회를 어떻게든 살려내야 한다. 신화나 동화가 어려움과 고립에 처한 주인공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전형적인 화법이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창의적 이야기를 이어간 셰에라자드의 지혜와 왕의 허위를 담대하게 고발한 아이의 용기처럼 대한민국이 주도적으로 난관을 극복하기를 바란다. 필요하다면 살인자 왕도 설득하고 벌거숭이 대통령을 향해서도 당당하게 평화의 진실을 말해야 한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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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