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과정이 되었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실의와 눈물은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일이다. 종목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결정이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3피리어드 전체 1시간’의 경기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조직력이 관건이다. 무엇보다 상대적 약체팀에 절대적인 것이 조직력인데 그것이 흔들렸다. 이에 관하여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크게 실책했다.

우선 설득과 동의의 과정이다. 문제가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다. 비록 특정 분야의 미시적인 것일지라도 그 설득 과정을 통하여 사회 전반의 정서적 연대의 수준이 높아진다. 이를 소홀히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북한에 대한 모든 사안은, 절망적이든 희망적이든, 언제나 ‘내일 당장’ 벌어질 수 있다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올림픽과 관련하여 책임 있는 당국자들은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촉구하는 한편 단일팀에 대한 의지 또한 수 차례 천명했다. 그러면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언제나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는 북한의 결정에 다각도로 대비했어야 한다. 이 또한 소홀했다.

다음으로, 결정 이후 쏟아지는 비판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이스하키 선수단을 진심으로 위로하지 못했다.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하는 어떤 결정을 신속하게 내려야만 할 때, 그로 인하여 파생하게 될 또 다른 문제들, 특히 마음의 문제, 정서적인 문제에 대해 정부는 깊은 공감의 자세로 나름의 논리와 사후의 대안들을 제시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문체부 장관의 답변은, 시인답지 않게 관료적이었고, 대한체육회는 무마하기 바빴다. 그러니 ‘이때다’ 하고 여지없이 ‘종북’으로 몰고 가는 고약한 말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남북한 동시 입장’과 ‘한반도기’를 생각해보자. 어느 정치인은 ‘한반도기’도 안되고 ‘인공기’도 안된다고 했지만, 일단 북한이 올림픽에 참가한다고 했으니 뭐라도 들기는 들어야 하지 않는가. 둘 중 하나밖에 없다. 먼저 인공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 선수단 입장도 따로 해야 한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내부적으로는 인공기 게양을 못마땅해하는 세력의 비판이 거세질 것이고 밖으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나라임을 공고히 하게 된다. 나는 지금 민족적 낭만주의를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당면한 동북아의 현실 속에서, 무엇보다 북핵 위기 속에서, 그리고 이른바 ‘급변 사태’라고 하는 느닷없는 상황 속에서 ‘동시 입장’과 ‘단일기’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한반도는 ‘북핵’이라는 조건 속에서, 4대 강국의 복잡한 이해까지 충돌하여 언제든 일상의 평화가 긴장과 불안으로 급전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를 타개해 나가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가 문화적 교류와 상징이다. 때마침 개최하게 된 올림픽은 ‘한민족 동질성’ 같은 추상적이며 낭만적인 수사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한반도의 위기 상태를 조절하고 일상의 평화를 지속하는 데 현실적인 의의를 지닌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 즉 이른바 북한의 ‘급변’을 생각해보자. 2009년 1월 미국 외교위원회가 작성한 ‘북한 급변 사태의 대비’는, 중국의 경우 북한 지역에 미군기지가 설립되는 것을 방지하고 대량살상무기와 난민의 유입으로 인한 정치적·경제적 혼란을 우려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경우 다른 국가들이 한반도 내에서 권력을 확장하는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견제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또한 일본의 경우 한국의 통일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일본은 미·일동맹의 틀에서 북한 사태에 제한적인 역할밖에 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의 공세적 해석에 따른 한반도 군사 개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일본과 밀접한 관계’ ‘한국 내 일본 국민의 생명 위험’ 등이 그 근거다. 2015년 10월, 일본 방위성은 “한국의 유효한 지배가 미치는 지역은 휴전선 이남”이라고 강변한 바 있다. 당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말하였으나 일본의 나카타니 방위상은 “이는 한·미·일 3국이 협의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우회했다.

이때 ‘남북한 동시 입장’과 ‘단일기’는 문화적 상징 효과가 크다. 다양한 측면의 남북한 동질성에 대해 ‘한·미·일 3국이 협의’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비극적이든 희망적이든, 이 한반도에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었을 때 필사적으로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무엇보다 현상적인 평화라도 유지해야 한다. 그 실질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동시 입장’과 ‘단일기’ 같은 문화적 상징이나 교류 왕래는 더 자주 해야만 한다. 그럴 때에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주도적인 발언과 행동이 가능하다. 어떤 나라는 올림픽을 통해 경제 발전을 도모했다. 어떤 나라는 자국의 위상을 세계지도 위에 각인시켰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번 올림픽을 통하여, ‘동시 입장’과 ‘단일기’를 통하여, 동북아의 긴장 완화와 일상적 평화를 천명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중국처럼 중화주의를 자랑하거나 러시아처럼 군사력의 확장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동시 입장’이나 ‘단일기’에 대해 긍정적인 사람들도 과거처럼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않다고 말한다. 당연한 소회다. 스포츠를 통한 일시적인 이벤트 효과는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 속에서 금세 물거품처럼 사라지곤 했다. 이번에는 굳이 감동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냉정하게 ‘동시 입장’과 ‘단일기’를 바라봐야 한다. 굳이 말하면 이는 ‘종북’이 아니라 ‘종남’이다.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일상적 평화를 위한 발언이자 향후 수많은 상황 속에서 적극적으로 우리, 즉 ‘남한’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행동이다. 이 관점에서 청와대는 대국민 담화 등의 형식으로 설명할 것은 설명하고 호소할 것은 호소해야 한다. 장관의 기자회견이나 ‘청와대 관계자’ 정도로는 안된다. 진지하게 서둘러야 한다시간이 없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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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