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을 앞두고 프로야구 각 구단은 미국의 애리조나와 일본의 오키나와로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예년에 비해 보름쯤 늦게, 2월 초에 일제히 다녀왔다. 그동안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가 지속적으로 요구한 ‘비시즌 보장’ 덕분이다.

프로야구는 초봄에 시작해 늦가을까지 지속된다. 혹서기에 잠시 쉬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한 팀은 일찍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지만, 어쨌든 세 계절을 호텔을 전전하며 경기를 치르는 ‘고난의 행군’이다. 가족과도 자주 떨어져 지내고 개인적인 활동이나 생각의 시간도 많이 갖기 어렵다. 시즌이 끝나면 연봉 협상이나 팀 이동 등으로 연말을 보낸 후에 며칠 쉬었다가 곧장 전지훈련을 가게 되고, 돌아와서는 시범경기 치르고 나면 또다시 기나긴 리그를 뛰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작된 비시즌 보장은 선수들에게, 모두가 성인이고 몇몇 선수는 중년인 이들에게 그리고 또 무엇보다 그 가족들에게 적절한 수준의 휴식과 마음의 여유를 제공하기 위한 요구였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이렇게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면, 초반에 찰과상들이 있기 마련이다.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야 가족과 해외여행도 하고 개인 트레이너를 초빙하여 일정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지만 무명선수들은 이 비시즌 동안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막막하고 혼자 훈련을 하려 해도 돈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 문제대로 구체적인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 방법이 생소하고 그 아이디어가 부족하다 해서 비시즌 보장이라는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일부 지도자들은 ‘애들은 흐트러지고 몸이 망가진다’고 걱정을 한다. 이 또한 옛날 방식이다. 모두가 성인이고 모두가 프로다. 감독의 눈앞에서 다 큰 프로선수들이 아침 일찍 ‘집합’하고 ‘기계’처럼 훈련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 여행하고 대화하고 생활하는 일상성이 소중하다. 바라건대 시즌 중에도 이런 일상성은 선수들이 자주 접해야 한다.

전지훈련도 오히려 효율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게 중평이다. 예년과 달리 짧은 시간이었으므로 ‘몸 만들기’보다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훈련이 많았다. kt의 김진욱 감독은 “이번 캠프는 팀 훈련 이외에 자발적인 개인 훈련 및 코칭스태프와 소통하는 시간을 많이 부여하며, 선수들 스스로 야구를 새롭게 바라보고, 생각하는 야구를 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했다. 부족한 기량이나 실전 감각은 시범경기에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작지만 소중한,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것이다.

시야를 넓혀 보자. 전지훈련은 곧 합숙 훈련인데, 이 ‘합숙’ 과정에서 꽤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폭력이나 성폭력 같은 끔찍한 범죄만이 아니라 ‘일상의 서열화’라고 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권력놀이가 작동한다. 선배들의 운동장비를 정돈하고 빨래하고 방 청소를 하는 게 훈련 아닌 훈련이다.

스태프가 부족해서 서로 힘을 모아 하는 풍경도 있겠지만 이를 ‘팀워크’라고 강요하는 문화가 오히려 지배적이다. 폭력이나 성폭력은 누구나 그것이 범죄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문제는 위계서열의 권력이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합숙소 문화다. 2군 소속 선수들에게는 외박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 팀도 있는데, 이 정도라면 외박뿐만 아니라, 그 나날의 생활이 얼마나 강압적일지 불을 보듯 뻔하다. 대다수 지도자와 일부 선수들은 이를 일종의 훈련 또는 팀워크라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생활 문화라고,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특수한 리듬이라고, 그러니 일반 사회인들의 생활 규범을 프로선수의 합숙소라는 특수한 조건에 대입하지 말라고 항변한다. 이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최근 들어 여자농구 쪽에서 단계적으로 합숙소를 폐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삼성생명이나 국민은행은 적어도 주부 선수들에 한하여 자유로운 출퇴근을 보장하려고 한다. ‘주부’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되지만 그렇지 않은 미혼의 여자선수들에게도 시행되어야 한다. ‘주부’니까 집에 가서 육아를 하는 것은 실로 막중한 일이지만, 동시에 성인 여자들이 이 사회의 평균적인 삶과 문화를 누리면서 각자의 지극히 내밀한 시간과 사적인 공간의 삶을 누려야 하는 것 또한 소중한 일이다. 이 사회의 누구나 일과 후에는 그렇게 살고 있다. 약간의 찰과상이 있더라도, 확대해야 할 일이지 축소할 일은 결코 아니다.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가 올해부터 실시하기로 한 ‘C+룰’도 마찬가지다. 직전 2개 학기 평점 평균 C+ 이상 취득한 학생 선수만 협의회와 관련된 대회에 출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공부하는 학생 선수를 지향하고 학생 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려는 시도다. 당장 지난해 1·2학기 성적 평균이 C+ 미만이면 올해 대회에 뛸 수 없다. 협의회의 조사에 따르면 102명이 학점 미달로 1학기 대학리그에 출전할 수 없다. 해당 학교 운동부와 학부모 및 해당 선수들이 답답한 심정에 항의를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유관 기관이 적절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결코 퇴행적인 방법은 안된다. 잔여 학기에 수업에 참여하여 지난 학기의 성적을 스스로 보완하는 등 전향적인 방법이어야 한다.

비시즌 보장, 합숙소 폐지, 학점 이수 등은 개별적인 사안이 아니라 운동 기계처럼 길러지고 그 권력서열의 틈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선수들의 인간적 삶을 위한 전향적인 시도다. 실제 적용이나 운영에서 일부 조정이 있을 수는 있어도 결코 퇴행해서는 안된다. 특히 지도자들이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으면 어디 가서도 당당해야 할 텐데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주눅 들었던 경험은 없는가. 타인의 신체를 학대하고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며 살아온 세월, 이제는 끝내야 하지 않는가.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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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