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풀들이 저 나무잎들이 건들거린다

더불어 바람도

바람도 건들거리며 정처없이

또 어디론가를…

 

넌 이미 봄을 살았더냐

다 받아내며 아픈 저 정처없는 건들거림

 

난 이미 불량해서 휘파람 휘익

까딱거리며 내 접면인 세계도 이미 불량해서 휘이익

 

미간을 오므려 가늘게 저 해는 가늘고

비춰내는 것들도 이미 둥글게 가늘어져

 

둥글게 휜 길에서 불량하게

아픈 저 정처없는 건들거림

더불어 바람도

또 어디론가를…

허수경(196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봄에 파릇한 풀들과 새잎이 가볍게 천천히 흔들린다. 땅 위에 공중에 떠서 이리저리 움직인다. 바람도 살랑살랑 더불어 부드럽게 불어오고 불어간다. 또 어딘가를 떠돌며 가려한다. 그렇게 우리에게 와서 가는 봄처럼 시인은 까딱거리며, 휘파람을 날리며, 건들거리며 봄을 산다고 말한다. 이 세계와 접면을 이뤄 아픈 시인은. 이 봄에는 좀 가볍게 봄바람 가듯이, 나른하게 졸음 오듯이, 낮잠 속 꿈 들듯이 살아도 좋겠다. 시인은 시 ‘정든 병’에서 “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에 정듭니다/ 가엾은 등불 마음의 살들은 저리도 여려 나 그 살을 세상의 접면에 대고 몸이 상합니다/ 몸이 상할 때 마음은 저 혼자 버려지고 버려진 마음이 너무 많아 이 세상 모든 길들은 위독합니다”라고 썼다. 이제 더는 아프지 말고 이 봄 여린 생명들의 기쁨과 그 기쁨의 환호를 모두 다 소상하게 보시고 들으시길.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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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