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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모여 앉은 가족과 친척들은 종종 싸우기 마련이었다. 예전에는 명절날 만난 친척들끼리 정치 얘기로 목청을 높이다 경찰서 신세를 지거나 심지어 강력사건을 저지르기도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언론들은 선동적인 기사와 헤드라인으로 불을 붙였다. 


가령 2000년 추석, 이제는 전설처럼 입에 오르내리는 1면 헤드라인을 다시 떠올려보자. “추석 분위기가 썰렁하다. 전국 어디를 둘러봐도 마찬가지다”라는 저 유명한 문구로 시작되는, ‘대구, 부산엔 추석이 없다’(동아일보, 2000년 9월9일)가 바로 그것이다.


 

‘커피당’ 참가자들이 ‘며느리도 모르는 우리동네 8개 투표 후보 알기’ (출처 : 경향DB)

저렇게 선전과 선동이 담긴 신문을 읽고 고향집에 돌아가면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가족’이 앉아 있다. 싸우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인터넷이 기존 언론의 역할을 넘겨받기 시작한 2000년대 초부터는 사정이 더욱 복잡해졌다. ‘아버지, 이걸 좀 보시라고요!’라며 신문을 집어던지듯이, 당시에는 크고 무거웠던 컴퓨터와 모니터를 내던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우리의 명절은 그런 것이었다. ‘민심’이 모이는 날,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하는 날.


필자는 지역색이 강하지 않은 집안 출신으로, 사실 이렇게 화끈한 명절 풍경은 건너 들은 이야기를 조합한 것이지 직접 겪은 일이 아니다. 그러니 만약 내가 이런 ‘정치적 명절’을 무슨 미풍양속처럼 회상한다면, 그것은 마치 영남 출신의 남성인 작가 이문열씨가 시집살이하다 죽은 여성의 입을 빌려 페미니즘을 비판한 소설 <선택>을 쓴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행동일 터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말은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절이 조용해지면서 한국 정치도 그 역동성을 상실했다고.


정치가 ‘시끄러웠던’ 시절로 돌아가보자. 당시에는 이른바 ‘지역감정’을 디디고 있긴 했지만 아무튼 개인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으며 그 실체를 유지하고 있는 정당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정당을 대표할 만한 인물들이 존재했고, 사회적 현안에 대한 그들 각자의 의견과 입장의 차이가 존재했다. 물론 ‘반김대중’ ‘반노무현’ ‘반이회창’ ‘반한나라당’ 등 온갖 ‘정서’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긴 했지만, 이 정당이 아닌 저 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건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 행동이었다.


오늘날의 모습은 그와 사뭇 다르다. 모든 정당이 입을 모아 중산층과 서민의 세 부담은 늘리지 않으면서 보편적 복지를 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민주 정권’이 자기 명의의 아파트를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 갖고 있지 않은 모든 이에게 뼈저리게 가르쳐준 바, 특히 ‘서민’들이라면 거대 여당 대신 거대 야당을 찍어야 할 뾰족한 이유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교조는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고, 대기업 노동자들에게는 귀족노조라는 야유가 쏟아지지만 늘어가는 비정규직 비율을 줄이기 위한 근본적 대책은 그 누구도 제시하지 않는다. ‘경제’가 일종의 숙명론처럼 여겨지고 있는 판에 ‘정치’의 목소리는 작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치는 조용할 수가 없다. 정치는 시끄러울 때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회 구성원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공동의 목표를 합의해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0여년간, 특히 당시의 여권이며 오늘날의 야권을 구성하는 그들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선거에서 질까봐 허둥지둥 단일화를 하고, 토론과 합의가 아닌 여론조사에 따라 후보를 정하고, 그나마도 부정 경선 및 결과에 대한 불복으로 얼룩져온 것이 최근의 정치다.


오늘날의 야권은 손님들이 짜장면과 짬뽕을 두고 싸운다고, 모든 메뉴를 짬짜면으로 통일시켜 버린 중국집처럼 보인다. 정치는 선택이며 갈등이고, 그 끝에 얻어지는 화해와 평화다. 


주인이 달력에 직접 쓴 대전 성심관의 메뉴표 (출처 :경향DB)


그러나 여당과 야당의 간극보다 야당 내 세력들의 차이가 오히려 도드라져 보이는 지금, 그 복잡한 내부 사정과 갈등으로 인해 정치는 국민들이 아닌 직업 정치인들만의 것이 되어 버렸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부터 조선일보의 검찰총장 몰아내기까지, 이 수많은 정치적 의제가 야권 내의 갈등으로 인해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했고 그리하여 추석 차례상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지 못했다면, 차라리 시끄러운 파열음을 내며 갈라서는 편이 낫다. 이제, 국민들에게 정치를 돌려달라는 말이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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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