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론에도 보도되었지만, 얼마 전부터 미국에서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일의 하나는 미국 국가안전국(NSA)의 젊은 직원이 그 비밀 활동을 폭로한 사건이다. 폭로내용은 국가안전국이 국민의 통신을 거의 무제한으로 사찰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설명에 정보누설자 에드워드 스노든의 개인적인 배경에 대한 조명이 시도되기도 하지만, 이 사건이 커다란 공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이 사건은 사건 자체의 중요성을 떠나서도, 일반적으로, 정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동력학의 복합성을 생각하게 한다.


공적 기구 안에서 체제를 벗어난 개인적인 결단은, 동기가 순정한 것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경우라도, 간단한 것일 수는 없다. 현재 스노든은 미국을 떠나 홍콩에 갔다가 다시 모스크바로 가 에콰도르의 망명 허가를 기다리며 공항의 통과여객구역에 머물고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일 자체가 몸으로나 마음으로나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위키리크스를 만들어 근년에 정치 정보 폭로 문제를 크게 이슈화한 줄리언 어산지가 그의 홍콩 체재비 등을 부담하여 도와주고 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것은 그가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여러 지원을 받고 있다는 증표로 생각할 수 있다.


홍콩 시내 전광판에 나온 에드워드 스노든 (AP연합)


물론 핵심은 내부 폭로 행위가 제기하는 여러 공적인 문제들이다. 미국 정부 당국이 크게 반발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미국의 검찰당국은 스노든을 “공문서 절취(竊取)”, “국방관계 비밀문서 외부 누설” 등의 혐의로 고소하였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미국의 국론은 전체적으로 양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 소속의 보이너 하원의장은 스노든을 국사범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에는 공화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의원도 여럿이 동조하였다. 그런가 하면 한 공화당 의원은 수백만의 개인정보를 은밀히 빼가는 정부의 부당한 행위를 폭로한 스노든의 행위는 커다란 “공공 봉사”라고 했고, 또 다른 공화당 의원은, 그에 대한 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해온 짓은 헌법 위반이라고 말하였다. 여론 조사에서 국민의 여론도 양분되어 나타난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의 ‘USA 투데이’의 여론 조사이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 49%가 스노든의 폭로가 중요한 공공 봉사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한 데 대하여, 43%는 그의 행위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그를 법에 의하여 처리하여야 한다는 것과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50% 대 38%였다. 오늘날 같이 단순화된 의견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정당한 행동은 정당한 행동이고 법은 법이라는-이러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로 생각된다.


현대국가는 법치국가(Rechtsstaat)이다. 그러나 법이 인간사 전부를 또 어떤 일의 인간적 의미 전부를 포괄할 수는 없다. 그리하여 여러 구체적인 고려에 의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사생활 보호는 근대 민주 국가의 주요 책임의 하나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국가는 국가의 안위를 책임져야 한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을 포함한 국제적인 인권단체 대변인들은 스노든을 지지하는 의견들을 표명하였다. 미국의 대표적인 인권단체인 미국시민권연합(ACLU)은 ‘외국 정보 감시법’과 관계하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법이 규정하는 바로는 정보당국이 특정한 통신회사로부터 이용자에 관한 자료를 제출하게 하려면, 담당 법정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 허가 요청 내용을 밝히라는 것이 소송의 요점이다. 물론 그 배후의 생각은 무제한의 통신자료 사찰이 사생활 보호에 관한 헌법 규정들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스노든 문제에 대한 논란은 여론과 법-세부적인 법 절차와 헌법, 그리고 미국 건국 정신을 나타낸다고 생각되는 헌법 정신 등의 개념을 주축으로 정리된다. 여러 사람의 의견에는 감시체제가 실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그에 대한 사실 자체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당국자들은 이 법이 주로 자국민이 아니라 외국인의 교신(交信)을 대상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또 그것이 국내 정치의 파당적 투쟁에 이용되었다는 혐의는 받지 않는 것 같다. 국가안전국장은 이 제도로 9·11 이후 50건 정도의 테러 사건이 방지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길게 되었지만, 이 사건을 생각해보는 것은 그것이 현재 우리 정치와 여론에 논란이 되는 화제에 평행관계를 가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말할 나위도 없이 화제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에 들어 있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이다. 우선 문제되는 것은 국가 기밀문서가 그렇게 공표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직설적인 답은, 그것은 허용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스노든의 경우에도,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유에스 투데이’ 여론 조사의 응답자들은 그의 행동의 긍정적인 기여를 인정하면서도 일단 법적 처벌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모순된 답을 내놓았다. 위키리크스의 원조인 줄리언 어산지에 대해서도 비슷한 답이 나올 것이다. 우리처럼 투명성이 높지 않은 사회에서는 특히 법을 수호하는 것이 지상과제의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표정굳은 남재준 국정원장 (경향DB)


그러나 일단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 스노든의 경우에서나 마찬가지로, 법의 저 너머에 비치는 중대한 문제를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다. 회의록에 놀란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쟁점이 될 수 있는 안건들에 대하여 노 전 대통령이 거침없이 양보할 뜻을 표했다는 것을 놀라워한다. 양보 사항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NLL이다. 극단적인 해석은, 이것은 헌법에도 규정된 국토를 내놓겠다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초연하게, NLL을 국경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인가 하고 물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소원이라고 말하는 통일은 바로 오늘의 국경을 넘어가자는 것이다. 그 관점에서는 지금의 경계선은 국경이 아니라 잠정적인 분계선일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국경,’ ‘경계선’ 또는 ‘한계선’을 철폐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통일의 이상을 위하여 남북이 아무 준비 없이 경계선을 트고 하나가 되는 것이 통일을 의미할 수 있을까? 십중팔구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갈등을 풀어 놓는 일이 될 것이다. 이 혼란과 갈등은 군사적 성격을 갖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나, 군사력이 대치하고 있는 곳에서 한 가지 현실적 대응책은 경계를 그어 놓는 일이다. 통일이 소원이라도 그것은 평화가 확보되고, 보다 나은 민족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조건하에서, 조심스럽게 접근되어야 하는 소원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정치 일선의 밖에 서서, 이러한 생각들을 여기에 적는 것은 민망스러운 일이다. 우리의 정치는 언제나 일촉즉발의 갈등 앞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에 모순된 선택들이 병존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리하여 정치에 갈등과 투쟁이 있는 것은 불가피하다. 좋게 보면, 싸움은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확신이 다른 데에서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확신에 대한 상세한 검토는 갈등을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확신 또는 이상이 같다고 하여도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격은 갈등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든, 이상과 확신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현실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심사숙고된 정책이다.


그러나 이상 자체가 근원적으로 여러 차원-서로 모순된 여러 차원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정치 싸움의 가장 깊은 요인이 된다. 모순의 선택, 선택의 모순이 겹치는 마당에서, 이상이 있고 숙고가 있다고 해서 현실적 해답이 쉽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희랍의 고전 비극들은 흔히 서로 모순되는, 그러면서 어느 쪽이나 버릴 수는 없는 가치들을 위하여 투쟁하고 충돌하는 드라마를 보여준다. 아곤이라고 부르는 이 투쟁은 해결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 심각성으로 하여 사람들에게 삶의 깊이를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해결을 위한 새로운 시도에 영향을 준다. 이 시도에는 삶의 진정성을 크게 손상하지 않는 한도에서 타협이 포함된다. 우리의 정치나 정치적 여론은 투쟁과 갈등의 수사로 가득하지만, 그것이 문제에 대한 심각하고 진지한 고민에서 나온다는 인상은 별로 주지 않는다.



김우창 |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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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