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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이 아니라, 제주에서 한동안 살아보는 ‘제주 한 달 살이’ 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 이해한다. 이효리처럼 아예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길 수는 없지만 한동안 체험해 볼 수는 있다. 매일매일 바다를 보는 삶.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다가 동네 카페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삶. 텃밭을 가꾸고, 시장에 가고, 시장에서 사온 싱싱한 바다 먹거리로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제주식 킨포크 라이프. 그런데 방이 없단다. 그 많은 ‘한 달 살이 달방’이 연초에 예약이 끝났을 정도다. 방학 시즌 월세가 무려 150만원 가까이 된다고 하는데 그조차도 올해는 끝나고 내년 시즌에나 입주가 가능하다고. 그런 가운데 ‘제주 한 달 살기’ 유행에 맞추어 분양과 동시에 월 단위 임대 서비스를 시작한 곳도 있어 살펴보니 ‘삶을 담은 공간’ 집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세련된 디자인의 호텔이나 콘도 같다. 정확히 ‘달방’ 콘셉트의 호텔급 콘도미니엄이랄까?

그렇다면 시야를 좀 더 넓혀보면 어떨까? 사실상 ‘한 달 살이’는 세계 어디서나 가능하다. 내 경우 2006년과 2007년 사이 몰타에서 시작해 바르셀로나, 로마, 취리히, 부다페스트 등의 도시를 돌며 한 달 혹은 두 달, 세 달을 살았던 경험이 있다. 그중 가장 생각나는 도시는 부다페스트다. 롤랑 바르트가 <카메라 루시다>에서 “나에게 있어서 풍경사진(도시건 시골이건)은 그곳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일으켜 줘야 한다”고 했는데 내게는 부다페스트의 모든 풍경이 그랬다. 부다와 페스트를 가로지르는 안개 낀 다뉴브 강, 백발의 피아노 연주자가 들려주는 ‘글루미 선데이’, 고대 신전이나 왕궁 같은 느낌의 오래된 온천장, 다뉴브 강을 끼고 달리는 노란색 트램,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활기찬 재래 시장,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임시변통의 건물 안에 자리잡은 ‘폐허 선술집(Ruin Pub)’…. 한마디로 부다페스트는 내가 아는 한 노스탤지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였다.

그 도시의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너무도 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고 그 마음이 결국 일을 저지르게 만들었다. 난생처음으로 외국에서 내 이름으로 된 아파트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한 것. 페스트 지역 안쪽 바르톡벨라 대로에 위치한 작은 아파트먼트였는데, 유틸리티 비용(전기, 물, 인터넷 사용료)을 포함한 월세가 50만원이 안됐고 보증금은 한 달치 월세분에 불과했다.
그래도 다 있었다. 침대와 옷장이 놓인 방 하나에 소파 있는 거실, 식탁까지 갖춘 주방, 욕조 있는 욕실과 화장실까지. 그리고 그곳에서의 두 달은 여행이 아니라 진짜 삶이었다. 그때 난 모 신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기고하는 여행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그 원고료로 겨우 먹고살았다. 이 때문에 주로 걸어서 마트나 시장에 갔다. 원고료가 들어온 날이면 털북숭이 남자가 자기 집 정원이나 산에서 꺾어다 파는 것 같은 꽃이랑 와인을 샀다. 그리고 2층에 위치한 내 집 창문으로 이웃집 남자가 길가에 개를 묶어 놓고 슈퍼 가는 걸 지켜봤다. 어느 날인가 남자가 술에 취해 묶어 놓은 개의 존재를 잊고 있다가 그 다음날 아침에 데려가는 것도 지켜봤다. 또 어떤 날인가는 내 방 창문 앞에 와서 지저귀던 새를 따라 다닌 적도 있었다. 그만큼 내 시간이 많았다. 한가한 시간…. 그 시간과 공간이 가슴 아프게 좋았다. 마치 ‘네가 옆에 있어도 네가 그립다’는 시인의 마음인 듯 좋았다.

몰타에서 보낸 세 달 살이도 좋았다. 고속도로가 필요 없는 아주 작은 섬나라여서 좋았다. 그 도시엔 트램은 없고 대신 박물관에 보내야 할 것 같은 노란색 버스가 돌아다녔다. 하지만 나는 주로 걸었다. 아침이면 걸어서 학교에 가고(배움의 의무밖에 없던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일종의 퇴행 심리로 다닌 단기 어학학교), 방과후에는 해변에 나가 책을 읽거나 일광욕을 하다가, 해질 무렵에는 반드시 슬리에마 해변을 끼고 조성된 해안 도로를 짧으면 한 시간, 길면 두 시간 가까이 걸었다. 그때 얼마나 날씬했는지 나이 서른여섯에 배꼽티를 입고 다니고 싶을 정도였다.

안식년을 맞은 그해 정말이지 원 없이 여행했고 또 머물며 살며 다른 곳에서의 삶을 충분히 경험했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미련이 남는다. 갈증을 느낀다. 가장 후회스러운 것이 ‘제주 살이’를 해 보지 못한 거다. 이제는 수요가 너무 많아서도 못 가겠다. 하지만 제주가 아니면 어떤가? 부안이나 나주, 상주, 임실, 장흥, 통영 등 한동안 살아보고 싶은 도시는 얼마든지 더 있다. ‘여수살이’도 근사할 것 같다.개인적인 취향이지만 한강의 단편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냥 그 인연과 취향의 끈을 믿고 덜컥 여수에 달방을 계약하는 거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그런 로망을 품고 산다는 게 일상을 지탱시키는 힘 아닌가?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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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