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교황 프란치스코는 ‘교황 권고’에서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질타해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이 인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규제였던 것처럼, 오늘날 사람을 죽이고 있는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도 금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적 살인을 하지 말라”가 현대 사회의 새로운 십계명이라는 말씀이다.


‘경제적 살인’을 일삼는 ‘새로운 독재’ 체제의 정점에는 재벌이 있다. 이들은 최고·최강의 경제권력자들로 명실상부한 ‘사회귀족’이다. 생래적(生來的) 비교우위를 가지고 태어난 이들은 경제를 넘어 정치, 사회, 문화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군사독재가 무너져 정치권력은 5년마다 바뀌지만, 경제권력의 ‘새로운 독재’는 변함이 없다. 너무 심한 경제범죄가 들통나 가끔씩 총수가 감옥에 가지만, 그의 영향력은 수감 전후 큰 차이 없이 견고하게 유지된다. 총수를 수사·기소한 검사, 판결을 내린 판사가 사건 종결 후 종종 총수의 변호인으로 변신한다. 최고위 공무원들은 속속 재벌 임원으로 합류해 대정부 로비에 앞장선다. 정당, 언론, 심지어 학계도 ‘새로운 독재’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거나 영합한다.


경제적 살인의 주된 피해자는 ‘호모 파베르’(노동하는 인간)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 직업병, 자살 등으로 죽고 있다. 최근 개봉된 화제작 <또 하나의 약속>은 ‘경제적 살인범’에 의해 ‘피살’된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 속 재벌회사 인사관리팀장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20대 초반 백혈병에 걸려 숨진 여성노동자의 아버지를 비웃으며 이렇게 내뱉었다. “정치는 표면이고 경제가 본질이죠.”


[김용민의 그림마당]2014년 2월13일(출처 :경향DB)


1987년 헌법이 보장하는 대의민주주의의 틀을 빌려 사회귀족의 과두정이, 시장경제의 이름을 내걸고 족벌지배 자본주의가 자리 잡았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공화국을 세웠던 주권자들은 언제부터인가 이들 사회귀족을 선망하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을 먹여살리는 게 누군가”라며 ‘경제적 살인범’을 두둔하기도 한다. 이제 경제권력은 새로운 ‘황금 송아지’가 되었다.


한편 비즈니스의 ‘갑을관계’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변질됐다. ‘을’로 통칭되는 사람들의 억울함과 고통은 이제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섰다. 남양유업 사건으로 공론화된 비상식적인 갑을관계의 문제는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편의점, 대리점,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하청업체 등에서 확인되는 갑을관계는 ‘사회적 노예제도’의 부활이다. 개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급이동이 어려워진 사회는 바로 고려시대 노비 만적이 규탄했던 “왕후장상의 씨”가 대대로 이어지는 사회다. 


일찍이 영국의 법사학자 헨리 메인은 “신분에서 계약으로”의 변화가 중세에서 근대로의 변화의 핵심이라고 갈파했다. 그런데 21세기 현대 한국에서 ‘계약’의 형식을 빌려 재벌을 정점으로 하는 ‘신분제’가 되살아나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퇴행과 반동은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우리가 적자생존,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원리를 신봉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로 전락해버린 탓이다. <또 하나의 약속> 주인공이 술 마시며 던진 이야기처럼, 우리가 스스로 뇌를 소화시켜 버린 멍게 신세가 된 탓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법적 보호를 박탈당한 채 ‘살(殺)처분’을 기다리는 ‘호모 사케르’(벌거벗겨진 생명)가 되고 말았다. 정글에서 약자의 고기를 확보한 소수의 승자는 잠시 승리감에 도취하지만, 이들도 끊임없는 경쟁과 축적의 노예가 되어 내면의 공허감에 시달린다.


[장도리]2014년 2월13일(출처: 경향DB)


올해 초 교황 프란치스코가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한 유경촌 신부는 “‘개인적 불의’를 뛰어넘어 ‘구조적 불의’의 해소를 통해 ‘의로운 사회 구조’ 건설을 실현하는 것이 사회 정의의 내용”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독재와 싸우고 의로운 사회 구조를 만들려면 가장 먼저 우리 속에서 타인의 고통과 억압에 공감하며 연대의 손을 내미는 ‘호모 엠파티쿠스’(공감하는 인간)를 깨워야 한다.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그리고 의로운 사회 구조를 추구하며 새로운 독재와 싸우는 ‘호모 레지스탕스’(저항하는 인간)를 호출해야 한다.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나는 저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


조국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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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