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으로만 떠돌던 ‘십상시’의 국정농단의 일각이 공개되었다. 다름 아닌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보고서를 통해서 말이다. 그러나 ‘폐하’는 사건의 핵심은 문건 유출이며, 이는 “국기문란”이므로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어명’을 내리신 후 “찌라시 얘기에 나라가 흔들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개탄하셨다. 그 ‘찌라시’를 만든 곳이 어디였는지 잠시 헷갈린다.

아, ‘군왕무오류’이니 ‘폐하’가 하는 일에 무슨 잘못이 있으리오. ‘군왕무치(君王無恥)’이니 ‘폐하’가 사과할 일이 뭐가 있으리오. 높은 안목과 식별력을 가진 ‘폐하’가 총애하고 신뢰하는 신하들에게는 무슨 허물이 있으리오. 모든 분란은 충성심 없는 ‘배신자’들과 이에 영합하는 언론과 무지몽매한 백성 때문이겠지!

‘친박 공신’과 ‘호위무사’들은 ‘폐하’와 ‘십상시’를 엄호하고 나섰다. 예컨대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문건의 60%는 사실이라고 발언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의 “정신상태”를, 그리고 ‘폐하’의 수첩 지시를 공개한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인간 됨됨이”를 공격하였다. 노회한 ‘도승지’ 김기춘은 ‘어심’을 잡기 위해 ‘십상시’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임기 2년 만에 발생한 권력암투와 이전투구가 목불인견이다. 그렇다면 ‘의금부’ 검찰이 ‘십상시’ 게이트를 제대로 수사할 것인가. 기대난망이다. 살아있는 권력에는 머리 숙이고 죽은 권력만 물어뜯는 습성은 바뀌지 않았다. 검찰은 ‘어명’의 취지를 받잡고 ‘십상시’의 중식당 회동 여부만 확인하여 사건을 마무리하고, 이들의 광범한 국정개입에 대한 수사는 덮어버릴 모양이다. 문건을 보도한 불경스러운 언론과 기자들은 혼을 낼 모양이고.

이 와중에 “실세는 청와대 진돗개”라는 썰렁한 유머를 날리며 ‘독락(獨樂)’하는 ‘폐하’에게 성찰이나 사과를 기대하진 않겠다. 그러나 존재하는 법은 시행해야 한다. ‘십상시’ 게이트는 2014년 여야 합의로 제정한 상설특별검사법이 규정한, 검찰 수사로는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이 확보되기 어려운 전형적 사건이다. 국회는 특별검사제 발동을 의결해야 한다. 그 이전이라도 ‘폐하’의 치마 뒤에 숨어 보신을 꾀하고 있는 자들이 조금의 애국심이 있다면 즉각 물러나야 할 것이다.

9일 서울 광화문앞에서 정의당 당원들이 내시복장을 한채 '정윤회 게이트'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한편 ‘십상시’ 문제가 터지니 이명박 정권하에서 일어났던 ‘사자방’ 게이트가 묻히고 있다. ‘사자방’ 게이트가 무엇이었나? 4대강, 자원외교, 방위사업 등 국책사업을 통하여 약 100조원의 혈세가 날아간 사건이었다. ‘십상시’ 게이트가 대중적 흥미를 더 끌겠지만, 사안의 심각도는 ‘사자방’ 게이트가 훨씬 중대하다.

‘사자방’ 게이트의 뿌리를 파헤치는 것은 진보나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감사원도 인정한 졸속·부실 공사를 벌여 4대강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격으로 막대한 혈세가 끊임없이 들어가는 거대한 ‘녹조 라테’ 저수지로 만들고 자신들은 막대한 이권을 챙긴 ‘국토참절범(國土斬截犯)’들을 어찌 그냥 두어야 한단 말인가. 한편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은 “나라 경제가 어려운데, 자원외교를 정쟁으로 삼아 안타깝다”고 발언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글로벌 호갱님’으로 만든 자원외교야말로 국부를 대규모로 유출한 비리가 아니던가. 엄청난 나랏돈을 허공에 날리며 제 뱃속을 채운 ‘매국배(賣國輩)’들은 반드시 징치해야 한다.

그리고 입만 열면 국방과 안보를 떠들던 전·현직 최고위 장교들과 방위산업체가 서로 결탁하여 사적 이익을 위해 천문학적 예산을 낭비하며 국방력을 심각하게 약화시켰음이 드러났다. 이들이야말로 악질적·상습적 안보사범이 아닐 수 없다.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이 발족했지만, 미국 군수업체나 국내 재벌 방산업체 등 방산비리의 ‘범털’은 건드리지 않고 국내 중소업체 같은 ‘개털’만 잡을 모양새다.

최근 여러 여론조사는 국민 70% 이상이 ‘사자방’ 게이트로 인한 혈세 낭비에 분노하며 국정조사를 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모자와 책임자 하나하나를 국회에 세워야 한다. 범죄증거가 드러난 자들은 법정에 세워야 한다. 근래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저해 규제를 “우리가 쳐부술 원수”라고 명명하고 “단두대”로 보내야 한다면서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민주공화국의 ‘원수’는 국정농단을 일삼은 ‘십상시’ 세력과 나라를 말아먹은 ‘사자방’ 책임자들이며, 이들이야말로 가장 먼저 정치적·사법적 단두대에 올라야 할 것이다.


조국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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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