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스마트폰 생방송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소식 때문일까? 며칠 전부터 크리스천 슬레이터가 해적 방송 DJ로 출연하는 영화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맞다, <볼륨을 높여라>. 때는 1990년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회원 가입만 하면 누구나 자기만의 방송을 만들 수 있던 때가 아니었다. 전학 후 외톨이가 된 마크는 아버지가 사준 무선 통신기로 밤마다 정체불명의 DJ 하드 해리가 되어 가슴에 응어리진 말들을 토해낸다.

ⓒ경향신문DB

“솔직히 기대할 일도 존경할 인물도 없는 이 날쌘 시대를 사는 게 지겹다고요. 제기랄, 안 그런가요? 이런 암흑 같은 생활이 당신을 미치게 하잖아요. 그러니까 뭐든 미친 짓을 해보자고요. 신나게, 창조적으로….”

DJ 하드 해리가 하는 말들이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움츠려 있던 내 청춘의 심장을 얼마나 고무시켰는지 모른다. 게다가 이제껏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정말 멋진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예컨대, 레너드 코헨의 ‘Everybody Know’ 같은 곡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젊은 청취자들이 모처럼 뜨거워진 자신의 심장을 느끼며 좋아했겠는가? 급기야 경찰의 추적 대상이 되어 해리는 더 이상 방송을 못하게 됐지만 ‘진실은 바이러스 같은 거다’라는 그의 말대로 수많은 해적 방송의 1인 DJ가 바이러스처럼 퍼졌다.

해리는 DJ라기보다는 요즘 말로 BJ(Broadcasting Jockey)였다. 혼자 PD도 되고, 작가도 되고, 촬영감독도 되고, 진행자도 되는 1인 다역의 창작자. TV가 아닌 보다 사적인 소통 창구 앞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새로운 형태의 오피니언 리더. 어릴 때 “남 먹는 거 쳐다보지 말라”고 배운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지만 카메라 앞에서 그저 먹어대는 ‘먹방’으로 억단위 고수익을 버는 BJ가 있는가 하면, 게임을 소개하면서 재미있는 토크를 곁들인 방송으로 ‘1인 방송계의 유재석’이라 불리는 이도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마이너가 아니다. 새로운 주류고 대세가 됐다. 한국에 ‘1인 인터넷 방송’ 채널만 무려 7000여 개, 방송 중인 BJ가 무려 150만명이라고 한다. 그중 스타급 BJ는 월 1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고 신변잡기에 가까운 수다만 떨어도 대기업 임원 못지않은 돈을 벌 수 있기에 초등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기 직업인이 됐다.

하지만 그들은 <볼륨을 높여라>의 의식 있는 반항아 하드 해리가 아니다. 너무 변질됐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병적일 정도로 천편일률적이다. ‘자발적 시청료’라는 명목의 ‘별풍선’ 현금을 받을 수 없다면, 혹은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없다면 그중 몇이나 1인 방송 활동을 계속할지 의문스럽다. 별풍선을 많이 받기 위해 자신의 외제차로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는 장면을 생중계하는 BJ가 있는가 하면, 안쓰러울 정도로 짧은 핫팬츠 차림으로 섹시 댄스를 추는 초등학생 BJ도 있어서 방송 보기가 겁난다. 아예 유통업계와 손잡고 상품 드라마 간접광고(PPL) 같은 광고를 해주거나 쇼핑 호스트로 나서는 BJ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갑자기 봇물 터지듯 확장된 ‘1인 생방송 시대’가 내게는 너무도 매력적인 세계로 느껴진다. 특히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페이스북 라이브’를 즐겨보는 편인데 얼마 전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실시간 토론 생방송을 지켜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마크 저커버그가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우주인들과 영상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페이스북 라이브 동영상으로 생중계될 때도 좋았다.

그러다가 문득 나도 ‘청취자’가 아니라 ‘생산자’ ‘창조자’로서의 1인 방송을 만들어 내보내야겠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만들고 싶은 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다. 예컨대 평창자생식물원은 아직 영업 허가를 받지 못했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아무나 찾아갈 수 없는 곳이다. 인터넷에도 정보가 거의 없다. 하지만 내가 타샤 튜더의 정원 못지않게 아름다운 곳이라고 소개했던 곳. 그곳에 가서 페이스북 라이브 버튼을 누르리라.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몸이 동해의 짙푸른 바다 동네, 묵호에 있으니 어쩌면 첫 방송은 묵호에서 진행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페이스북의 니콜라 멘델손 부사장은 “이 추세대로면 5년 내 모든 글이 동영상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워싱턴포스트 같은 기존의 유력 신문도 독자를 현장으로 바로 데려다주는 ‘동영상’에 맞추어 회사를 리폼하겠다고 했다. 내가 사랑하는 ‘경향신문’도 그런 준비를 하고 있다면 참 좋겠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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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