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저널리즘의 거장 마시모 비탈리(Massimo Vitali)가 찍은 사진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인파로 장관을 이루는 해변 풍경이다.

그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름난 여름 해변 풍경 속에서 있을 수 있는 온갖 이야기를 상상하며 그곳에 가고 싶다는 열망을 품는 동시에 그것이 나의 현실이 아니라 그저 남의 이야기이고 또 사진이라는 사실에 이상하게 안도하게 된다.

그보다 더 잔인한 작가도 있다. 여행이나 휴가에 대해 누구보다 더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마틴 파(Martin Par)의 사진을 보면 안도감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해방감이 느껴진다.

천연기념물 제260호인 강원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백룡동굴. 경향신문 자료사진

진저리 칠 정도로 평범하고 재미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마틴 파는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에서 기가 막히게 재미난 사진을 뽑아내는 작가로 알려졌는데 특히 유명 관광지와 휴양지의 적나라한 사실 풍경 찍기가 그의 주특기다. 미안하게도 우리 관람객은 넘쳐나는 쓰레기통과 수영복 차림으로 매점 앞에 줄을 선 짜증난 얼굴들, 그 앞에서 빡빡 울다가 기껏 아이스크림(그것도 무더위 때문에 처량맞게 녹아내리고 있는 꼴의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담은 휴양지 사진을 보며 키득거리는 가운데 굉장한 위로를 받는다는 사실. 이런저런 이유로 여름휴가를 못 간 채 뜨겁게 달구어진 도시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사실상 마틴 파의 사진만 한 선물이나 힐링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올여름 유럽의 에메랄드빛 해변에서 연일 40도를 넘는 이상 고온 현상으로 ‘힐링’은커녕 ‘럭셔리한 지옥의 맛’을 경험한 여행객들(특히 크로아티아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과 지중해 연안)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만약 그들이 여름휴가를 준비하며 관광업자들이 준비한 광고 사진이 아니라 마틴 파와 마시모 비탈리의 포토 저널리즘 사진을 봤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거기 갔을까 싶다. 아니 그보다 미국의 사상가 겸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이 쓴 글귀 몇 가지만 읽었어도 해외 휴가 여행은 애초에 꿈도 안 꿨을 것 같다.

예컨대, “여행은 어리석은 자의 낙원이다” “여행에 대한 맹신은 자기 문화의 결핍에서 나온다” 같은 강렬한 지침의 문구들 말이다. 여담이지만 마시모 비탈리도, 마틴 파도, 에머슨도 좋은 작가다.

좋은 작가란 ‘우리가 일상에서 잘 볼 수 없는 삶의 중요한 면들을 상기시켜야 한다’는 시인 워즈워스의 기준에서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일찍이 소로를 통해 에머슨을 알고 에머슨을 읽으며 그의 사상에 무릎을 꿇었던 나다. “여행이라는 미신에 매혹당하는 것은 자기 수양이 부족한 탓이다. 하지만 인간 내부에서 힘이 넘쳐 오르면 그는 자신의 의무 속에서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를 발견하게 된다.” 에머슨의 그와 같은 가르침을 읽으며 여행으로 잠시 한눈을 팔기보다 본질적으로 내 삶의 방향과 장소를 바꾸는 데 나의 모든 에너지와 열정, 시간을 쏟았다. 그로부터 7년쯤 지나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한 것일까?

이제 다시 나도 여행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솟구친다. 해외 휴가 여행의 유혹이 슬금슬금 수시로 머리를 쳐드는 가운데 아이슬란드나 피렌체, 치앙마이, 프롬펜 등 남 몰래 동경하던 몇 개의 지명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바람이 내 이름이라도 호출한 듯 설레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예전처럼 저가항공편을 검색하지는 않는다. ‘저가’라고 덜컥 예약했다가 일찍 취소한다고 했는데도 날린 돈이 너무 많아 이제는 아예 저가항공 사이트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그 대신 하는 일이 있다. 강원도 지도 살펴보기! 구석구석! 차를 몰고 나가기! 그다음 돌아다니기! 구석구석!

덕분에 숨겨진 보석 같은 강원도를 많이 알게 됐다. 그중 제일의 보석을 소개하라면 나는 주저없이 백룡동굴을 꼽을 것이다. 종교와 자본이 만나 출중하게 눈부신 오대산 월정사나 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올라가 관람할 수 있는 설악산, 잘 정비된 동해 바다에 최첨단의 트렌디함까지 갖춘 강릉과 경포대도 좋지만 자본으로 분칠할 수 없는 놀라움이나 신비감 면에서 백룡동굴이 앞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실상 폭염을 피해 동굴만큼 시원한 피서지가 있을 수 없는데 백룡동굴은 탐사 인원이 제한되어 있고 동굴 내부의 훼손을 감추기 위한 인공조명이 거의 없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다. 아주 최근까지 일반 공개를 금지하며 천연 그대로 잘 보존한 세계적인 수준의 석회암 동굴이기 때문에 ‘관람’이 아니라 진짜로 ‘탐사’ 수준의 복장과 자세를 갖출 것을 요구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뿐 아니라 동강을 따라 굽이굽이 가는 길 자체가 힐링이 되고 2시간 정도 걸리는 동굴 탐사는 한마디로 오감으로 체험하는 종합예술이고 신비다. 당연히 주말이나 여름휴가철에는 예약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곳이 됐으니 미리미리 챙겨두시길. 사전 예약은 필수고 9세 이하, 65세 이상의 제한 나이가 있다는 점도 기억해 두자. 또한 비수기 평일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일종의 ‘행운아’이니 그 행운 놓치지 말라는 말도 덧붙인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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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