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기억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년 한 해 동안 이 지면에 글을 실으며 달았던 직함은 ‘아마추어 창작자’였다. 권위나 전문성이 깃들지 않은 직함을 달고 권위 있는 신문에 글을 싣는 것이 사회적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내 글을 욕하고 싶은 마음이 드러나는 댓글의 “역시 아마추어답군요” 같은 구절을 보며 (너무 예상대로라) 웃었던 일과 닿아있다.

개인적인 고민도 반영됐다.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러던 중 한국예술인복지재단으로부터 ‘예술활동증명’ 승인을 받았다. 뭔가 ‘공인된’ 예술인이 된 것 같고 왠지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인간이 이렇게 권위에 약한 짐승이다…. 권위주의를 부단히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내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알게 된 것은 2014년이다. 당시 나는 소규모 잡지를 기획·편집·발행·유통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보람은 느꼈지만 돈은 못 벌었다. 생활에 필요한 비용은 다른 매체의 취재를 돕거나 기고를 하는 ‘알바’로 충당했다. 수입의 대부분은 주거비용과 식비로 소비됐다. 다른 데 돈을 쓰기 위해서는 식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계란과 우유, 밥버거와 영양제로 연명하던 중, 바닥에 누워 천장의 새는 물을 보며 내가 빈곤의 그늘 아래 있다고 느꼈다. 글 쓰는 것 말고 다른 재주가 없어서 그런가? 다른 기술을 배우면 좀 나을까? 기술을 새로 배우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이것저것 알아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교육지원바우처 제도를 접했다. 창작을 위한 기술을 배우는 비용을 최대 10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나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요구하는 예술인의 ‘자격’을 충족하지 못했다. 2012년 ‘월간잉여’ 창간 이래로 쭉 무언가를 만들거나 사회에 화두를 던지는 활동을 했음에도 그랬다. 2016년에 비로소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인정하는 예술활동을 해냈다! 남성 중심 영화를 ‘미러링’하는 단편영화를 찍었고, 그것이 영화제에 상영된 것이다.

보람 없게도, 내가 예술활동증명 승인을 받은 해는 더 이상 예술인 교육지원바우처 제도가 시행되지 않을 때였다. 웹사이트에 기재된 번호로 전화 걸어 그 제도가 왜 사라진지 아느냐고, 다시 시행할 의사는 없냐고 미련 뚝뚝 떨어지는 문의를 했다. 전화 받은 분은 상냥한 음성으로 웹사이트에 안내되지 않은 정책은 잘 모른다는 답변을 주셨다. 웹사이트에는 국공립 미술관 및 공연장에서 30% 내외 관람료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예술인 패스, 개인 심리상담 비용을 12회 한도로 지원하는 제도(이건 좀 유용할 듯), 가난을 증명하면 받을 수 있는 창작 지원금 등이 안내돼있었다. 내친김에 각 지역 문화재단과 콘텐츠진흥원 홈페이지도 둘러봤다. 제도의 경향성은 대동소이했다. 절대적 빈곤을 증명하거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심사단의 선택을 받은 이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

절대적인 빈곤을 증명하기를 요구하고, 그 기준을 통과한 이들에게만 시혜적인 혜택을 부여하는 방향성은 시대착오적이다. 한국 사회 구성원 다수가 빈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다.

최종소비지출 대비 문화여가지출 비율이 주요 선진국보다 현저히 낮고, 경제적 부담과 시간 부족으로 여가활동에 불만족하는 현실을 드러내는 각종 지표가 이를 방증한다. 다들 먹고사는 것만으로 빠듯한 것이다.

지원금 제도에도 폐해가 존재한다. 며칠 만에 100억원의 정부예산을 썼다는 지난 정권의 문화교류 행사가 대표적인 예다. 정당하지 않은 권력이 할당한 예산이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지만, 큰 예산이 특정 주체에 쏠리는 구조 자체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돈으로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무엇이 아름다운지 사유하는 시간을 확보하고,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표현하는 감각과 기술을 익힐 수 있었을지 생각해본다.

결국 예술 복지에 대한 고민은 보편 복지 증진에 대한 바람으로 수렴된다. 한정된 예산이 좀 더 돌봄·교육·의료·주거 등 필수적인 삶의 요소를 보장하고, 보편적인 시민들의 여가를 위한 수당에 쓰일 수 있기를. 정책 기획자와 예산 심의자들의 의식 전환이 시급하다.

<최서윤 <불만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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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