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거저 오지 않는다. 그냥 태어나지 않는다. 사람은 내게 주어진 자원을 가지고 음식을 만든다. 이때 자원이란 농업을 기본으로 인간과 자연과 국제관계와 과학기술 등등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결과다. 날것 상태의 자원이 먹을 수 있는 밥, 빵, 국수에서 장, 과자, 일품요리 등등이 되기까지 인류는 어마어마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고 주고받고 이어왔다. 자원의 한계를 다만 감수할 뿐 아니라, 탐구하고 대응하는 가운데 교육도 문화도 인간다움도 태어났다. 음식은 사람답게 살아남기 위한 기본기술(low-tech)이자 1만년 농업사와 함께 이어진 문화의 꽃이다. 그 꽃은 갖가지 모양과 빛깔로 피어나 오늘에 이른다. 위도마다 대륙마다 민족 저마다 서로 다른 일상의 식생활이야말로 거대한 강줄기, 산맥 또는 해양 못잖은 일대장관이다.

한식 또한 그중 하나다.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돼 온 식재료 및 그와 유사한 식재료를 사용해 한국 고유의 조리 방법 또는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음식으로 한국 민족의 역사적, 문화적 특성을 갖고 생활 여건에 알맞게 창안되어 발전, 계승돼 온 음식”(농촌경제연구원 자료) 같은 말로 한식의 갈피를 잡기 어렵다면 내 점심시간부터 들여다볼 일이다.

막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한 끼 먹자고 모두의 발길이 다급해진다. 어린이, 청소년, 노인, 학생, 취업준비자, 산업예비군, 자영업자, 봉급쟁이 누구나 이 한 끼만큼은 놓칠 수 없다. 아침 거른 사람도 많다. 이 한 끼를 놓치면 하루가 엉망이 된다. 이때의 한 끼를 감당하는 골목골목, 거리거리의 밥집, 국밥집, 분식집 그리고 학교식당이며 구내식당의 한식부, 더하여 점심시간만큼은 반드시 밥과 반찬이 있는 차림 또는 구이나 찌개를 일품요리 삼아 백반 정식을 준비하는 온갖 형태의 요식업소가 바로 오늘날 한식의 제일선, 최전선이다. 한국인이 소화해 변형한 중식, 일식, 양식도 의미가 깊다. 점심시간에 한해 “매일 반찬이 바뀌는 한식뷔페”를 차리는 맥줏집이 여기서 어찌 빠지랴.

오늘날의 한식은 매일 한식을 선택하는 서민대중의 한 끼에, 스스로 나는 한식에 종사하노라 여기는 종사자들의 인식과 매일 수행하는 일 속에 적나라하고 정직하게 깃들어 있다. 산업혁명과 현대의 충격을 지나 오늘에 이른 한식의 실제는 초·중등 학생과 서민대중의 점심 한 끼가 나오는 구체적인 과정 안에 압축되어 있다. 가정식 또는 한 사람의 자취(自炊)만으로는 못다 먹일 사람을 먹이는 바로 그 사람의 일이 한식의 세목을 이룬다.

그 사람은 장을 본다. 식료 선택과 반찬 구성과 간 보기에서 재량이 있다. 웬만하면 온통으로 재료를 받아 밑손질을 한다. 점심 장사 직전까지 정신이 없다. 저녁 장사 전까지 다시 밑손질을 포함한 준비에 뛰어든다. 장보기와 간 보기에 재량이 있고, 차림에서 임기응변이 가능하다면 주방장급 일꾼이고 실제 요리사다. 하지만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일은 대중매체, 인터넷, 소셜미디어에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방송이 고급 음식 호들갑에 ‘셰프(chief)’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면서 그 존재가 더욱 희미해졌다. 분야를 떠나 식당에서 당연히 하는 일인 재료 손질-준비를 굳이 ‘프렙(prep, preparation)’이라는, 그럴 이유가 보이지 않는 외국어로 바꾸어 부르는 데 이르러 일 또한 희미해졌다.

아줌마 또는 이모로 부르는 그 사람이다. 요식업계가 찬모라 이르는 그 사람이다. 업무 능력과 일의 실제에서 셰프이고 밤낮없이 셰프의 프렙을 수행한다. 서민대중이 하루에 한 번은 만나되, 만난 줄도 모르고 지나치는 셰프다. 그러니 걱정이다. 2018년 최저임금에 대한 어깃장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한식의 제일선은 그 어깃장이 특히 심한 곳일 수 있다. 쉬이 역사와 문화 운운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아줌마’를 노동과 직업의 예외자로 대한다. 이러다 한식의 제일선이 최저시급 7530원 사각의 가장 나쁜 예가 될 수도 있다. “최저임금 줄 수 있으면 셰프 쓰지 아줌마 쓰겠느냐”는 억지가 훗날의 음식문헌으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노동과 직업과 제도의 실제에서 당대를 돌파한 경험이 있는 문화만이 내일을 기약하는 법이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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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